‘향수’ ‘가을편지’ 등을 부른 가수 이동원(70)씨가 지리산 인근 전라북도 남원에서 14일 별세했다.

가수 이동원(1951~2021) 하면 노래 ‘향수’가 떠오른다. 정지용 시에 작곡가 김희갑이 멜로디를 입혔다. 테너 박인수와 함께 불러 성악가와 대중 가수가 협업한 ‘크로스오버’의 전범으로 여겨진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1989년 이동원은 정지용 시집을 들고 박인수를 찾아갔다. 박인수는 “정지용 시를 읽는 순간 미꾸라지를 잡으러 개울을 헤집고 다니던 유년 시절의 고향 풍경이 떠올랐다”(2013년 5월 30일 자 A23면)고 했다. 작곡가 김희갑은 박인수·이동원의 음역대에 맞게 곡을 만드느라 고생했다. 박인수는 김희갑이 작곡하는 데 일곱 달 걸렸다고 회고했다. “(김희갑이) 중간에 관두려는 걸 이동원이 찾아가 떼를 쓴 바람에 일곱 달 만인가에 나왔는데 기가 막히더라고요.”(2012년 10월 13일 자 B1면)

이동원 별세. 2021년 11월 15일자 A12면.

김희갑은 더 고생했다고 회고했다. 곡을 만드는 데 열 달 걸렸다고 기억했다.

“가수 이동원을 아끼는데 그 친구가 1988년 ‘향수’를 들고왔어요. 월북 시인 정지용이 해금(解禁)된 게 그 무렵입니다. 도저히 노래가 안 되겠더라고. 열 달 걸려 만들었는데 동료 선후배들이 놀랐어요. ‘희갑이가 그 시를 노래로 만들었다고?’라고요. 대중가요 작곡가의 자존심을 살렸다는 뜻이지요.”(2010년 3월 27일 자 B2면)

‘국민 노래’가 된 ‘향수’ 앨범은 200만장 넘게 팔렸다.

이동원은 1970년 데뷔했지만 오랜 기간 무명 가수였다. 1984년에서야 이름이 알려졌다. 그해 봄이었다. 시인 정호승을 찾아가 정 시인 작품 ‘이별 노래’에 곡을 붙여 노래하고 싶다고 해 허락을 받았다. 그해 가을 정 시인을 다시 찾아가 노래를 들려줬다. 작곡가 최종혁이 곡을 만들었다.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나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정 시인은 당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애절한 곡조 위에 이동원의 사색적인 음색이 흐르는 노래를 들으며 절로 감탄했다. 이 노래로 이동원은 처음 방송사 10대 가수에 올랐다. 앨범은 100만 장 넘게 팔렸다.(2021년11월 16일 자자 A38면)

음유시인 이동원. 2021년 11월16일자 A38면

이동원은 시에 곡을 붙여 노래하는 ‘음유시인’이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고은 시에 김민기가 곡을 쓰고 1971년 최양숙이 부른 ‘가을 편지’는 이동원이 리메이크해 다시 ‘국민 애창곡’으로 태어났다.

이동원은 ‘나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이별 노래’) 노랫말처럼 2021년 11월 14일 영원한 별이 됐다. 식도암이었다. 말년엔 전북 남원 지리산에 있는 개그맨 전유성 집에서 투병 생활을 했다고 유족은 전했다. 전유성은 젊은 시절 이동원 집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둘 모두 오랜 기간 경북 청도에서 살며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전유성도 지난 9월 25일 이동원을 따라 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