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헨릭(57)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는 “로마 공화정 때엔 남성 엘리트 집단이 결혼을 기피하며 저출생 문제가 생겼지만 기독교 문화의 확대와 시저 황제의 세제 혜택 등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며 “한국의 출산율 또한 끌어올릴 기회가 충분히 올 것이므로 지나친 공포에 빠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인류사에서 출산율 후퇴와 회복은 반복되어 왔고, 인류는 늘 해결책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인류가 어떻게 지구에서 가장 발전한 종이 됐는지에 대한 논의는 많았다. ‘총, 균, 쇠’(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지리와 환경의 중요성을, ‘사피엔스’(유발 하라리)는 인지 혁명과 농업 혁명을 강조한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위어드’ ‘호모 사피엔스’(21세기북스)를 쓴 헨릭 교수는 인류 번영의 힘을 문화에서 찾으며 기존 논의의 공백을 메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지난달 경주문화재단이 연 ‘2025 국제경주역사문화포럼’에서 헨릭 교수를 만났다. 그가 한국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뇌보다 ‘연결’이 똑똑하다
-인간이 똑똑해서 번영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인간의 뇌는 큰 편이지만 구체적인 능력이 극적으로 뛰어난 건 아니다. 어린아이와 침팬지·오랑우탄을 비교하는 인지 실험을 했는데, 대부분의 항목에서 인간이 뒤처졌다. 특히 정보 처리 속도는 침팬지가 압도적이었다. 사회적 학습 능력 하나만 인간이 뛰어났다. 심지어 인간 뇌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현대 인류의 뇌는 네안데르탈인보다 작다. 3만 년 전에 비해 10%가량 작다. 문화적 현상인 ‘집단 두뇌’가 커졌기 때문이다.”
-‘집단 두뇌’가 무엇인가.
“인간은 사회적으로 방대한 지식을 쌓고 대대로 ‘다운로드’받는다. 먼 옛날 수렵 채집인도 아이에게 생존 비법을 전수하며 살아남았다. 인류가 공유하는 지식 ‘집단 두뇌’가 점점 커지기 때문에 개별 인간의 뇌가 꼭 클 필요가 없어졌다. 생성형 AI 시대가 오면서 인간의 인지적 능력은 더 떨어질 수 있다. AI를 활용하면 되니 정보를 머릿속에 넣고 다닐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반대로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열린 것이기도 하다. 데이터베이스가 넓을수록 창의성이 커진다. 창의성의 근간은 ‘연결’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똑똑해서 사회가 발전한다는 건 착각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이디어’라는 것도 실제론 없을지도 모른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개념은 프랑스 물리학자 푸앵카레에게도 있었고, 뉴턴과 라이프니츠만큼 대수학 분야에서 성과를 낸 학자들이 17~18세기에 있었다. 천재 한 명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 연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연결의 예를 들자면?
“1900년대 미국의 펍과 살롱은 사회적 중심지였다. 부자와 가난한 이들 모두 드나들었다. 사교적 네트워크의 허브이자 아이디어 교류의 장이었다. 금주법이 시행되자 펍과 살롱이 많은 카운티의 특허 출원율은 10% 이상 대폭 떨어졌고, 술집이 적은 카운티는 감소 폭이 작았다. 금주령이 풀리니 펍을 자주 다니는 남성 발명자 위주로 유의미한 성과가 이어졌다. 같은 맥락에서 19세기 후반 유럽에 철도가 놓이니 출판되는 책이 많아지고 분야도 다양해졌다. 철도가 있는 마을 사람들은 더 창의적으로 변했다.”
-물리적 연결이 거의 완성된 지금도 유효한 논리인가.
“물론이다. 지금 한국이 그렇다. 한국에서 탄생한 수많은 문화 콘텐츠는 전 세계 창의성의 원천(wellspring)이 되고 있다. 한국 문화를 한국 밖에서 새롭게 재조합해 콘텐츠로 만들고 인기를 끈다. 나도 평소에 비빔밥, 김치, 불고기를 즐겨 먹는다. 연결이 됐기 때문이다. 연결이 잘되는 사회는 문화적 특징 4가지가 있다. ‘낯선 이에 대한 신뢰·공정’ ‘외부에 대한 개방성’ ‘뚜렷한 주관에 대한 관용’ ‘언론·표현의 자유’다. 현대 인류가 발전할 수 있는 문화적 토대다.”
◇신체·혼인·출산까지 바꾸는 문화의 힘
-문화가 인류를 발전시킨다는 말은 쉽게 와닿지 않는다.
“근대 서구 사회가 발전한 모습을 보면 된다. 프로테스탄티즘의 대두를 보자. 개인이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종교적 믿음은 남녀 문해력을 키웠고 인지 능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어머니는 아이를 더 건강하고 똑똑하고 부유하게 키웠다. 초기 개신교 선교회가 진출한 지역의 문해율은 가톨릭 선교회가 진출한 곳보다 약 16%포인트 높았다. 가톨릭과 달리 고해성사가 없던 개신교인들은 죄를 짓고 난 후 생산적 노동으로 정화했다. 이 힘은 서구 경제와 민주주의 발전에 결정적 계기가 됐다. 문화의 힘이 번영을 만들고 때로는 유전자에까지 영향을 준다.”
-문화가 신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건가.
“혼인 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부일처 사회와 일부다처 사회는 남성 호르몬이 다르다. 일부일처제에서 남성이 결혼하고 아버지가 되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줄어든다. 이혼을 하면 다시 높아진다. 일부일처 규범은 남성에게 짝짓기 기회를 제한하고 자녀와 더 접촉하게 만든다. 반면 일부다처제에는 미혼 남성이 많아진다. 남성이 대체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게 유지된다. 기혼 남성도 혼인 시장에 계속 남아 있으니 수치가 그대로거나 적게 감소한다.”
-사회에는 어떤 영향이 가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으면 신뢰가 감소하고 경계심이 올라간다. 세계를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경향도 있다. 여러 연구에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남성은 범죄를 저지르거나 위험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나타났다. 단순히 남성이 범죄를 많이 저지른다는 뜻이 아니다. 외부 변수를 통제하고 남성 비율이 높은 집단을 봐도 범죄율이 높아지는 현상은 같다.”
-결혼의 성격도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것 같다.
“최근엔 틴더 같은 온라인 데이트 앱이 결혼의 양상도 바꾸는 것 같다. 과거엔 같은 분야의 직업군에서 결혼할 확률이 높았다. 자녀 또한 비슷한 분야로 진출했다. 데이트 앱의 등장은 내 선호에 따라 사람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직업군을 벗어나 우울한 사람은 우울한 사람끼리, ‘끼리끼리’ 결혼을 더욱 극단적으로 가능하게 만든다.”
-한국의 가장 큰 고민도 결혼과 출산이다.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며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세계적인 트렌드다. 과거 인류는 자녀를 많이 낳을수록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올라가는 구조였다. 친족의 규모가 커지고 일손이 많이 생긴다. 반면 지금은 자녀를 적게 낳을수록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는 상황이다. 한국의 출산율이 특히 낮은 건 사회에 가부장제가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국가의 소멸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인간이 재생산 본능을 역행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로마 공화정 시기가 대표적이다. 귀족 계층 엘리트 남성들은 결혼과 출산을 꺼리며 향락을 추구했다. 시저 황제는 병역과 세금의 기반이 되는 시민이 줄어드는 걸 국가적 위기로 보고 출산 세제 혜택 제도를 도입했다. 또 이 시기에 ‘친출산적(pro-natalist)’ 종교인 기독교가 태동하며 사회를 재조직했다. 결혼과 가정을 신성화했고 공동체 연대가 강화되며 저출생을 극복했다. 역사는 순환하고 문화의 진화는 늘 창의적이었다. 한국도 충분히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있고 답을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