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박상훈

1600년 전 갑옷으로 중무장하고 전장을 호령하던 신라 장수의 무덤이 발견됐다. 무덤 안에서는 장수의 인골과 갑옷·투구 일체, 금동관 일부, 큰 칼, 말갑옷과 투구, 함께 순장된 시종으로 추정되는 인골 등이 쏟아져 나왔다.

국가유산청은 “신라 왕경 핵심 유적 복원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발굴 조사 중인 경주 황남동 120호분 아래에서 5세기 후반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돌무지덧널무덤)인 120호분보다 먼저 조성됐던 4세기 말~5세기 전반 목곽묘(덧널무덤)를 찾았다”고 20일 밝혔다. 국가유산청은 이 무덤을 ‘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라고 이름 붙이고, 발굴 현장을 언론에 공개했다.

'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 발굴 공개회 현장 모습. /국가유산청

무덤 안에서는 신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관의 일부가 나왔고, 사람과 말의 갑옷과 투구 일체가 양호한 상태로 출토됐다. 신라 고분에서 말 갑옷이 출토된 건 경주 쪽샘 지구 C10호분에 이어 두 번째다. 신라 중장기병(重裝騎兵·중무장을 하고 말을 타고 싸우는 무사)의 실체와 함께 5세기 전후 신라의 강력한 군사력과 지배층의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30세 전후 최고위층 장수… 시종과 함께 묻혀

주인공은 최고위층 신분의 장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팀은 “쪽샘 지구 C10호는 장수의 갑옷 일체가 철제 갑옷이었지만, 이번엔 몸통 일부가 가벼운 유기질 소재의 경량 갑옷인 데다 금동관도 부장품으로 넣었다는 점에서 높은 신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주곽에서 인골과 함께 출토된 무덤 주인공 신라 장수의 치아. /국가유산청

무덤은 주인공이 묻힌 주곽(主槨), 부장품과 순장자를 묻은 부곽(副槨)으로 구성됐다. 인골과 함께 출토된 치아를 분석한 결과, 장수의 나이는 30세 전후로 추정됐다. 금귀걸이를 귀에 걸고, 고리자루큰칼 한 점을 오른쪽 상체 옆에 묻었다. 머리맡에선 금동관 일부가 파편 상태로 나왔다. 김재열 국가유산진흥원 팀장은 “△과 凸 문양을 투조(透彫·뚫어 만드는 기법)한 금동판 여러 점이 출토됐다. 고구려 지안에서 출토된 금동 장식이나 신라 금관총 금제 모관(帽冠)에서 볼 수 있는 형태”라며 “지금까지 경주에서 발견된 신라 금동관 중 가장 이른 시기 제작된 것”이라고 했다.

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에서 출토된 금동관 조각. /국가유산청

부곽에선 순장자의 인골 전신이 처음 확인돼 주목된다. 모시던 주인을 따라 함께 묻힌 시종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뼈가 팔을 벌리고, 다리는 ‘O’자 형태로 벌어져 누운 채 발견됐다. 발굴 조사를 진행한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5세기 이전 신라에 순장 풍습이 있었다는 건 알려져 있었지만, 신라 최상위 계층의 무덤에서 파편으로만 확인됐던 순장자 인골 전신이 실물 자료로 나온 건 처음”이라고 했다. 먼저 말 갑옷을 넓게 펴서 깔고, 그 위 양쪽에 사람의 갑옷을 배치한 다음, 사이에 순장자를 끼워 넣은 형태다. ‘쩍벌남’ 형태의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발견된 이유다. 이종훈 국가유산청 역사유적정책관은 “순장자의 키(160~165cm 추정)를 고려하지 않고 공간에 맞게 욱여넣다 보니 무릎을 세워서 매장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다리가 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 주인공인 신라 장수와 함께 순장된 시종을 복원한 상상도. /국가유산청

이번 무덤은 5세기 후반 적석목곽분인 경주 황남동 120호분 아래에서 발견됐다. 나무로 짠 곽 안에 널과 부장품을 안치하는 목곽묘 형태로, 시기는 4세기 말~5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위아래 무덤의 축조 시차가 길어야 100년밖에 나지 않는다. 국가유산청은 “신라의 무덤 양식이 목곽묘에서 적석목곽분으로 변화하는 전환기적 요소를 명확하게 보여준다”며 “이번 발견은 신라의 고분 양식이 변하는 맥락을 이해하고 밝힐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밝혔다.

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 중 부곽에서 확인된 신라 장수의 대퇴갑(허벅지를 가리는 갑옷).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은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을 맞아 새로 찾은 무덤과 발굴 현장을 공개한다. 27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황남동 1호 목곽묘 발굴조사 현장을 볼 수 있다. 같은 기간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신라월성연구센터(숭문대)에서는 황남동 120-2호분에서 출토된 화려한 장신구들을 전시한다. 신라 공주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이곳에선 5년 전 금동관과 귀걸이, 목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금동신발 등이 출토돼 화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