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카페 문화’를 주제로 한 집담회에 초대받았다. 한 참석자가 “요즘 왜 이렇게 사람들이 카페를 좋아할까요?”라는 화제를 꺼냈다. 나는 “빈 탁자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각자의 집에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은 온전히 빈 탁자가 있는지 물었다. 아무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빈 탁자에 커피 한 잔 놓아둘 수 있다는 것은 사실 꽤 큰 위로가 된다. 집은 고사하고 어딘가 자신의 자리 하나를 온전히 갖는 것이 어렵다고 한숨 쉬는 이가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역설적으로 사람 많은 카페 한가운데서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

별것 아닌 듯하지만 빈 탁자는 압박에 내몰린 누군가의 내면에 많은 위로를 줄 수 있다. 이처럼 카페는 불완전한 공간과 시간에 저항해 안정을 찾는 욕구가 분출된 집단 공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세대를 불문하고 이 문화는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세월이 지날수록 내면에 쌓이는 수많은 상념만큼 실제 개인 공간을 차지하는 짐도 많아지는 법이다. 집 안 곳곳 어딘가 켜켜이 쌓아놓은 그 많은 소유물은 어느 순간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 무의미하게 짊어지고 사는 무언가가 되어 버린다. “나는 정말 짐이 많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이날 집담회에서도 집 창고 안에 짐이 가득하다는 한 참석자는 자신은 아무리 큰 창고를 갖게 되어도 빈 작은 탁자 하나 갖지 못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탁자 위에 계속 무언가를 올려놓게 되더라고 했다.

우리가 카페에 가는 이유는 빈 탁자를 앞에 두고 앉아 시간을 내려놓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삶 속 상념을 덜어내는 사색의 시간을 갖게 된다. 이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빈 탁자 하나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이 듦과 짊어짐이 반비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뿐이다. 우리는 세월 앞에 마음의 공간을 넓히고 물리적 공간을 줄여야만 내려놓고 버릴 수 있다. 그래야 빈 작은 탁자 하나를 온전히 소유할 수 있다. 물론, 이게 어렵기에 사람들은 그냥 카페를 가는 것 같다. 조금 씁쓸하지만, 이것이 카페가 번성하는 이유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