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

1981년 10월 6일 안와르 사다트(1918~1981) 이집트 대통령은 수도 카이로 교외에서 거행된 군사 퍼레이드를 보던 중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이집트 국영방송은 “이날 오후 1시경 ‘중동전쟁 8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를 참관하던 중 사열대 앞을 통과하던 차량 1대가 갑자기 행렬을 이탈하면서 차량에 탄 일단의 군인들이 대통령을 향해 사격을 가해왔다”고 전했다.(조선일보 1981년 10월 7일자 1면)

사다트 사망. 1981년 10월 7일자.

사다트는 1952년 육군사관학교 동기인 나세르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이집트 왕국 파루크 1세를 축출하고 공화정을 세웠다. 1970년 9월 부통령일 때 나세르 대통령이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자리를 이어받았다.

사다트는 당초 “이스라엘에 대하여 비타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중도 좌파 정치인”(1970년 10월 7일 자)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1973년 10월 6일 시리아와 함께 이스라엘을 기습해 제4차 중동전쟁을 일으켰다.

이전 3차 전쟁까지 이스라엘이 압승한 것과는 달리 이집트군은 개전 초기 이스라엘군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며 선전했다. 결과적으로 전쟁에서 이기지는 못했지만 이후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맺는 기틀을 마련했다.

사다트는 당초 소련 후원을 받는 기존 반미(反美) 노선을 이어갔다.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은 아랍권의 주권의 침략”(1971년 6월 11일 자)이라고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을 비난했다.

미국-이집트 국교 재개 발표. 1973년 11월 8일자.

사다트는 4차 중동 전쟁 후에는 극적인 반전을 모색했다. 1973년 11월 키신저 미 국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1967년부터 단교 중이었던 미국과 국교 재개를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수에즈 운하 지배권도 7년 만에 다시 얻는 외교적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키신저의 중재로 이스라엘군은 점령 중이던 수에즈 서안에서 7년 만에 철수했다. 1974년 6월 사다트는 닉슨 미 대통령과 회담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이 이집트에 핵 연료·기술을 판매하고 20억달러 민간 투자를 보증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스라엘에도 유화적 자세를 취했다. 1977년 11월 19일 아랍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이스라엘은 에프타임 카지트 대통령, 메나헴 베긴 총리 및 각료 등 75명이 나와 사다트를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전쟁·유혈 종식 노력 합의’를 발표했다.

이집트-이스라엘 역사적 회담. 1977년 11월 20일자.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수상은 21일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두 지도자 간의 정상회담에서 이루어진 ‘합의 성명’을 낭독했다. 성명 전문은 다음과 같다.

‘사다트 대통령의 진지하고 용기 있는 이스라엘 방문에 부응해서 예루살렘의 역사적인 양국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상호 입장을 제시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동안에 양측이 제안한 노선에 따라 대화가 계속될 필요성을 믿으면서, 중요한 이번 방문의 성과 전망을 높이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는 이스라엘 국민의 의사를 표현하여 이러한 희망찬 조치가 양국 간의 대화를 통해 더 한층 추구되어 제네바 중동평화회의에서 모든 인근 아랍 국가들과 평화 조약을 체결하게 할 성공적인 협상의 길을 열 것을 제안한다.’”(1977년 11월 22일 자 1면)

이스라엘-이집트 전쟁 유혈 종식노력 합의. 1977년 11월 22일자.

1978년 9월 18일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 3개월 내 평화조약 체결에 합의했다.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수상은 18일 카터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지난 13일간 캠프 데이비드 산장에서 열려온 3국 정상회담을 마무리 짓고 백악관에서 ①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3개월 내 평화조약 체결 ②이스라엘 군의 시나이 반도 전면 철수 ③5년 후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에서의 팔레스타인인의 완전 자치 허용 등을 골자로 한 ‘중동 평화구조’란 2개 문서에 정식 서명함으로써 새로운 중동 역사의 장을 열었다.”(1978년 9월 19일 자 1면)

1978년 9월 19일자. 이스라엘-이집트 석달 내 평화조약.

두 나라 정상이 백악관에서 카터 미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해당 문서에 서명하는 모습은 미 전역에 TV로 생중계됐다. 사다트와 베긴 두 정상은 중동 평화를 이끈 공로로 이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사다트-베긴 노벨평화상. 1978년 10월 28일자.

그러나 대가도 컸다. 아랍권 전역에 ‘반(反)사다트’ 항의 시위가 확산됐다. 아랍 국가들은 1979년 아랍연맹에서 이집트를 추방했다.

사다트를 사망에 이르게 한 총격전을 벌인 이들은 이슬람주의 과격파인 지하드 소속의 할리드 이슬람불리 육군 중위와 부하들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