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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도 내신도 부족하지만 출석률만은 1등. 창우(유이하)는 대학과 병역특례까지 지원해 준다는 M&H 엔지니어링 가공팀의 실습생으로 혹독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작업장 봄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백수진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49번째 레터는 3일 개봉한 영화 ‘3학년 2학기’입니다. 요즘 교복만 입었지 하는 짓은 어른 뺨치는 19금 청소년물에 지치셨다면, 이 작품을 추천드립니다. 다소 슴슴하게 느껴질 순 있지만, 맑고 담백해서 오히려 여운이 오래 남는 영화입니다.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 창우(유이하)는 3학년 2학기, 학창 시절의 마지막을 공장에서 보냅니다. 대학과 병역 특례까지 지원해준다는 중소기업에 들어가 현장 실습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교복 대신 작업복을 입고, 학교에서 공장으로 첫발을 내디딘 열아홉 사회 초년생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3학년 2학기' /작업장 봄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리얼리티입니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 현장 실습생들이 주고받는 대사 하나하나에서 면밀한 인터뷰와 자료 조사가 엿보입니다. 마치 방금 학교에서 수업을 받다가 나온 것 같은 신예 배우들도 사실감을 더합니다. 특히 창우 역을 맡은 배우 유이하는 등장한 순간부터 마치 동네에서 한 번쯤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진짜 열아홉 학생의 얼굴을 마주한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영화를 볼 때면, 관객은 기계 소리가 들리고 불꽃이 튈 때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공장에서 일어나는 안타까운 사고들을 뉴스에서 많이 접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이 작품은 산업재해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노동자의 권리를 주창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이란희 감독은 시사회에서 연출에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음의 기록들을 계속 들춰보면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지만, 그들의 친구나 후배, 여전히 살아남아서 일을 하고 있는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산재로 인한 사망 사건에 집중하기보다는 여전히 살아가며 노동하는 청소년과 청년들을 우리가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랐다.”

그래서인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악덕 공장주나 탐욕스러운 사장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맡은 일을 잘 해내고 싶은 아이가 크고 작은 일에 부딪히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립니다. 점심 시간에 실습생끼리 함께 밥을 먹거나, 편의점에서 성인이 된 걸 축하하는 소소한 일상들도 놓치지 않고요. 이제껏 영화로 만들어진 적 없는,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차분히 전합니다.

영화 '3학년 2학기' /작업장 봄

감독과 배우들은 은유 작가의 책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함께 읽었다고 합니다. 2014년 식품 공장에서 일하다 목숨을 끊은 현장 실습생 김동준군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해 직업계고 학생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인데요. 작가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 아이들의 정체성이 현장 실습생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죽는 순간 비운의 현장 실습생으로 박제되고 만다. (…) 현장 실습생 김군 혹은 이군이 아니라 오롯한 존재, 저마다 고유한 관계 속에서 경험과 기억을 쌓아갔던 복잡하고 다채로운 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낀 이유다.”

영화는 현장 실습생 김군·이군이 아니라 이들 한 명 한 명이 고유한 존재라는 걸 각인시키듯, 주인공이 자신의 이름을 쓰는 장면을 반복해 보여줍니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 아닌, 내 친구, 내 조카 같은 한 아이의 삶을 섬세하게 그립니다.

영화 '3학년 2학기' /작업장 봄

영화 개봉에 앞서 올해 봄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국수학여행’ 상영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마이스터고등학교에서 실습을 나간 적이 있었던 한 관객이 감독에게 쪽지를 남겼다고 하네요.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창우와 우재의 노랗게 뜬 얼굴. 아이들에게 너무 추운 공장.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 같습니다.”

‘3학년 2학기’처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좀처럼 조명되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스크린에서 더 많이 만나볼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럼 오늘 레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