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관제 스크린에 그려지던 항로가 한순간 ‘인간 관계의 지도’로 겹쳐 보였다고 했다. “보이지 않던 걸 보이게 만든 상상에서 출발했습니다. 그게 전부였죠.” 지난달 웨이브에 공개된 드라마 ‘S라인’의 원작자 꼬마비 작가가 말한 출발점이다. 성적 관계를 맺은 사람들만 머리 위에 붉은 선으로 연결되는 세계. 판타지적 장치지만, 그는 그 선을 통해 가장 현실적인 감정, 욕망, 두려움을 꺼내 올렸다.
꼬마비는 ‘살인자ㅇ난감(2010)’으로 주목받은 뒤 ‘S라인(2011)’과 ‘미결(2014)’까지 이른바 ‘죽음 3부작’을 완결지었다. 이후 ‘데우스 엑스 마키나(2018)’ ‘환상의 용’(2021)' ‘이염’(移染·2022)‘으로 초현실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모든 인물을 2등신 SD(Super Deformed)로 그리는 독특한 그림체, 4컷 분할과 소제목 형식은 그로테스크한 주제와 맞물려 특유의 대비를 만든다. 일상의 틈에 이질적 개념을 끼워 넣는 그의 방식은 낯선 장면에서 오히려 ‘현실’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이번 ‘S라인’의 붉은 선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인가, 보이면 그것이 전부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이야기를 썼다. 작품 속 인물들은 선 앞에서 고개를 떨군다. 말수는 줄고, 눈빛만 흔들린다. 작가는 원작에서 인물들의 마지막 대사를 일부러 “결국 똑같지 않나?”로 통일했다. 붉은 선이 많은 사람은 가벼운 사람, 선이 없는 사람은 순결한 사람이라는 단순한 분류는 곧 무력해진다. “인간의 기준에서 더럽든 깨끗하든 너나 나나 같다”는 씁쓸한 결론에 이르면, 관객과 독자의 시선도 함께 흔들린다.
그는 “S라인의 주제를 (성관계는) 수많은 인간관계 중 가장 꺼내기 어려운 하나를 택했을 뿐”이라고 했다. “만약 채무나 원한, 권력의 선이었다면 이야기는 훨씬 무거워졌을 거예요. 답이 없는 세계에서 사람들은 경계하고 무기력해지기 마련이고, 곧 그것을 왜곡하거나 이용하죠.” 작가는 이것을 “인간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선의 유무보다, 선을 본 뒤 각자가 내리는 ‘다음 선택’이야말로 이야기의 실체라는 뜻이다.
단순한 작화, 높은 밀도가 특징인 꼬마비의 서사는 대사와 장면 설계에서 힘을 얻는다. “간단한 그림일수록 대사와 장면 구성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됩니다. 시작은 대사인 경우가 많아요. 시각보다 감정이, 감정보다 말이 먼저 떠오르곤 하죠.” 일상의 장면은 흐름에 맡기되, 극적인 장면은 “수학처럼 계산”한다. 어색하면 앞뒤 회차까지 통째로 고친다. 지난해 2월 넷플릭스에 공개된 ‘살인자ㅇ난감’이 단순한 선과 면으로 ‘살인의 정당성’이라는 난제를 밀어붙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사화에 대한 태도는 담백하다. ‘살인자ㅇ난감’에 이어 두 번째 실사화를 맞은 그는 “감사한 마음이 전부였고, 기대도 걱정도 하지 않으려 했다”고 했다. “제 이야기는 제 안에서 완결됐고, 이후는 그분들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캐스팅에 대해서도 조심스럽다. “구체적인 장면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이수혁 배우가 붉은 선을 많이 가진 인물을 맡을 수도 있겠다고 막연히 상상했죠. 이수혁, 이다희, 아린… 예고편 속 얼굴이 기분 좋게 낯설었습니다.” 그리고 작품과 제작진, 원작자의 관계를 이렇게 비유했다. “신랑과 신부는 영상화된 작품이고, 제작진은 부모죠. 저는 조부모의 위치입니다.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내는 존재죠.”
연이어 영상화 바람이 불지만, 그의 바람은 한 가지다. “만화가 콘텐츠로서 존중받길 바랍니다.” 영화화가 경제적·사회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는 있어도, 궁극적으로 만화가 문학과 동등하게 인정받는 날을 꿈꾼다. 그는 “만화로 노벨상을 받는 날이 온다면 정말 기쁠 것”이라며 “장르나 세계관의 한계를 두지 않고 ‘내가 보고 싶은 이야기’를 쓰겠다”는 다짐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