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장례식장. 둘째 언니 상중인 나는 조문객을 안내하기 위해 접수 테이블 앞에 앉는다. 책상에는 부의록 한 권이 가지런히 놓였다. 나는 첫 장을 넘겨 사인펜을 놓고 조문객을 기다린다. 건너편 방에는 문상객이 끊이지 않는다. 근조(謹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복도에 화환이 저마다 이름표를 달고 늘어선다. 저들의 석별을 가만히 지켜보자니, 줄지은 사람들이 망자에게 마지막으로 전하는 말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접수대 책상 서랍을 열어 부의 봉투를 꺼내 놓는다. 앞서 누군가가 상중에 사용했을 서랍에 끄적거린 글들이 보였다. 반쯤 열린 서랍 틈새로, 잘 닿지 않는 구석진 곳에 쪽마다 꺼내지 못한 마음들이 서툰 낙서로 적혀 있다. “미안해, 사랑해요” “다음 생에는 좋은 집에서 사세요” “고통 없는 세상에서 영생하시길.” 고인에게 바치는 마지막 말을 읽으며 그들의 사연을 생각한다.

서랍은 비밀을 넣어두는 작은 공간이다.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 말하지 못한 속내, 감정의 잔해, 기억과 후회의 파편을 담아놓는 심상의 상자다. 차마 밝히지 못하고 가두어 놓은 내면의 조각들이 반쯤 열린 틈으로 새어 나온다.

마음의 서랍을 반쯤 열면, 낙서 같지만 미루거나 묻어두고 싶은 말이 웅크리고 있다. 누군가의 죽음은 늘 남은 자들에게 말을 남긴다. 망자도 얼마나 많은 말을 가슴속에 묻고 떠났을까. 수신인을 잃고 떠도는 짧은 이별사를 읽고 떠도는 말을 위로한다.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은 끝내 정리되지 않는다. 죽은 자는 계속해서 살아남은 자 안에서 말 없는 침묵의 목소리로 존재한다. 장례식장 접수대에 앉아 조문객을 맞는 일은, 한 사람의 삶을 정리하는 마지막 경계선에 서는 일이다. 이 자리에 앉아 조문객을 기다리는 손길이 다녀간 곳에, 나의 슬픔도 한 조각 서랍 속에 넣는다. 편편이 눌러쓴 아픔의 이력들, 먹고사느라 말하지 못한 말도 접어 넣는다. 살아생전 마음 틈새를 비집고 나오지 못한 말을 넣자, 수십 번 삼킨 마음들이 편안하게 누운 고인처럼 서랍 안에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