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700달러. 베이스 연광철(60) 전 서울대 교수가 1990년 불가리아로 유학을 떠날 때 수중에 있던 돈의 전부였다. 동구권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한국과 불가리아의 수교가 체결된 직후였다. 그는 “당시 계획 경제에서 시장 경제로 넘어가던 시기였기 때문에 버스 회수권처럼 A4 용지 크기의 쿠폰을 받으면 일일이 가위로 잘라서 설탕과 치즈, 계란과 밀가루를 사야 했다. 계란 한두 판을 사면 일주일 내내 열심히 달걀만 먹었다”며 웃었다.
그런데도 동유럽행을 고집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가슴속에 언제나 러시아와 동유럽의 선 굵은 저음(低音) 가수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고학생이었지만 “오페라와 발레, 음악회를 어느 때보다 많이 보았던 시기였다”고 했다. 1993년부터 그에게 반전이 잇따랐다. 그해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창설한 제1회 오페랄리아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이듬해 베를린 국립 오페라극장(슈타츠오퍼)의 단원이 됐다. 그는 “그 무렵 가장 기뻤던 건 쌍둥이 딸의 아빠가 된 일”이라며 미소 지었다.
한국은 피아노·바이올린 같은 기악이나 소프라노 같은 여성 성악만 강국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의외로 탄탄한 ‘국제 경쟁력’을 지닌 분야가 바리톤과 베이스 같은 남성 중저음 성악이다. 연광철이 대표적이다. 현재 베를린 슈타츠오퍼를 비롯한 세계 명문 오페라극장에 서고 있으며, 베이스 강병운(전 서울대 교수)에 이어서 1996년 작곡가 바그너의 오페라만 전문적으로 공연하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무대를 밟았다. 베를린 필 같은 명문 악단들이 사랑하는 독창자이기도 하다. 2018년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정상급 성악가에게 수여하는 ‘궁정 가수’ 칭호도 받았다. 신장은 170㎝. “체구는 작지만, 노래는 거인처럼”(뉴욕타임스)이라는 평처럼 ‘작은 거인’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오는 8월은 ‘연광철의 달’이다. 우선 다음 달 17일 예술의전당에서 한국과 독일 가곡들로 리사이틀을 연다. 박목월과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을 모은 구성이 이채롭다. 그는 “가곡뿐 아니라 모든 노래의 출발점은 시어(詩語)”라며 “시적 아름다움을 잘 담아낸 가곡들을 부르는 건 성악가의 사명”이라고 했다. 독일어 사투리까지 일일이 녹음해서 공부하는 것으로 소문났기에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그는 “같은 바그너 오페라도 독일 북부와 오스트리아 극장에서 노래할 때는 관객을 고려해서 발음도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태어난 한국과 활동하는 독일의 노래들을 이어 붙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연광철은 “머리색도, 외모도 다른 외국에서 외국 노래를 부르다 보면,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깊어진다. 한국 가곡을 100곡 정도 부르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의 무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엿새 뒤인 23일 예술의전당에서 후배 성악가인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서울대 교수), 2021년 영국 BBC 카디프 국제 콩쿠르 우승자인 바리톤 김기훈과 ‘합동 무대’를 연다. ‘스리 테너’ 같은 고음 가수들의 무대는 적지 않지만, 정상급 중저음 성악가들의 합동 공연은 드문 경우다. 1부에서는 모차르트·바그너·베르디의 오페라 아리아들, 2부에서는 한국과 독일 가곡들을 부른다.
사무엘 윤은 2022년 독일 쾰른에서 역시 ‘궁정 가수’ 칭호를 받았다. 2019년 김기훈은 연광철을 배출한 오페랄리아 콩쿠르 2위에 올랐다. 연광철이 개척한 신작로를 뒤따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는 “본래 예술에는 등수가 없을 뿐더러, 나 자신도 1등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항상 2등으로 뒤에서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자세로 산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볼 수 있지만 가장 낮게 나는 새(남성 저음 가수)가 가장 오래 날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