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각국에서 상을 휩쓸 즈음 한 미국 매체 인터뷰가 화제가 됐다. 그간 한국 영화가 미국에서 숱한 화제를 일으킨 적은 있으나, 유독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성과가 부진한 걸 어찌 생각하냐는 질문에 봉 감독은 “오스카는 로컬(local)”이라는 도발적 대답을 내놨다. 미국 내 영화 시상식이니, 미국 영화가 주로 상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얘기다. 비유컨대 청룡영화제나 백상예술대상에서 외국 영화가 상을 받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였다. 이듬해 미국 ‘로컬’ 영화 시상식은 최초로 외국어 영화에 작품상을 수여하며 국제 수준으로 등선(登仙)했다.
그땐 미국만의 일이라 여겼지만, 최근 국내 예능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여성 댄스 크루끼리 춤으로 우열을 가리는 서바이벌 예능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에서 이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스우파’에는 오직 국내 여성 댄스 크루만 참여해 왔다. 한때 모든 예능 프로그램을 장악하듯 쏟아진 숱한 국산 서바이벌 예능과 별반 다를 바는 없었다. 그러다 올해는 글로벌 여성 댄스 크루를 모아서 ‘월드 오브 스우파’라는 국적 대항전으로 프로그램을 개편했는데, 정작 한국 대표팀이 탈락하는 바람에 결승전엔 해외 댄스 크루 세 팀만 올라갔다. 국내 서바이벌 예능에서 한국인이 결승전에 올라가지 못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이게 마냥 나쁜 일일까.
지금까지 한국 영상 콘텐츠의 세계화는 주로 한국 출연자가 만들어낸 최종 콘텐츠를 해외에 유통시키는 일에 집중했다. MBC ‘대장금’이 근동(近東) 지역에서 시청률로 1위를 달성했다거나, SBS ‘런닝맨’이 동남아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는 식이다. 산발적으로 이어지던 성공 사례는 넷플릭스와 같은 거대 OTT 플랫폼이 국산 콘텐츠를 세계 안방으로 실어 나르며 어느새 보편적 성공 공식으로까지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유통의 성공일 뿐이다. 유럽 문화계 인사가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활동하는 것 같은 활발한 인적 교류는 없기 때문이다.
‘월드 오브 스우파’는 단순히 해외 시청자에게 K 콘텐츠를 유통시키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인재들이 한국 무대로 역(逆)유입되는 구조를 실험했다. 한국이 단순한 콘텐츠 수출국을 넘어 문화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실험해 본 귀한 사례다. 비슷하게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를 통해 국내 요식 업계가 세계적 주목을 받자, 종영했던 요리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가 부활해 해외 유명 요리사들이 국내 예능에 깜짝 출연하는 일도 생겼다. 플랫폼으로서 한국 문화 콘텐츠가 더디지만 계속 확장되어 가는 셈이다. 이번 스우파 한국 대표팀의 탈락은 아쉬울 수 있지만, 한국인이 모두 탈락할 수 있는 한국 예능은 앞으로 더 많이 나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