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교복 차림 학생의 통화 내용을 들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또 다른 어느 날,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에게 상처받고 괴로워하던 내게 누군가 말했다. “쓸데없는 일에 마음 두지 마. 그러게 사람을 왜 그리 쉽게 믿어?”
시니컬한 사람들을 이해한다. 나와 상관없는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쓸데없는 일에 마음 두지 않으며, 사람을 믿지 않는 삶은 그렇지 않은 삶보다 훨씬 평온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더 현명할지 모른다. 하지만 마음 한편이 쓸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럴 때마다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작품상 포함, 아카데미상을 7개나 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주인공 에블린(양자경 분)은 세탁소를 운영하며 평범하게 살아간다. 어느 날 세금 문제로 국세청에 불려 가고, 남편이 이혼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성 소수자 딸과는 갈등을 겪는다. 심지어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계 외에 수많은 평행우주가 있으며, 그중 자신이 ‘가장 실패한 에블린’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에블린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뒤섞여 무너져 가는 평행우주를 지키기 위해 악당들과 맞서 싸운다. 그러다 마주한 최종 악당은 다른 평행우주에서 온 자신의 딸, 조이다. 에블린과 조이는 살벌하게 싸우며 피투성이가 되고, 두 사람을 바라보던 남편 웨이먼드가 결국 간절하게 외친다. “그만해. 다정함을 보여줘.” 그리고 그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바꾼다.
다정함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우리를 시니컬하게 만드는 이 세상에서 다정한 사람만큼 강하고 귀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정해지기만 하면 해결되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다. 다정함은 매우 전략적인 해결책이다. 우주를 구하는 방법은 악당을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정하게 대하고 안아주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보면서, 시니컬한 사람도 현명하겠지만, 더 현명한 사람은 다정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두 조금 더 다정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