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가수 열성 팬으로 거듭난 엄마의 인생, 사랑해서 개를 유기한 ‘강아지 공장’ 아들…. 우리 사회 구석구석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담은 단막극 다섯 편이 최근 미 휴스턴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작년 CJ ENM의 단막극 프로젝트 ‘오프닝(O’PENing)’을 통해 나온 단막극 6편 중 5편이 나란히 상을 받은 것이다. 휴스턴 영화제는 신진 창작자들을 조명해 온 북미에서 셋째로 오래된 영화제다.

‘단막극 실종’에 가까운 국내 상황에서 틈새를 비집고 나온 신인 작가들의 작품이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가 주도하는 지금 드라마 시장에서 ‘K드라마’의 역량을 키워온 단막극 같은 장은 되레 설 곳을 잃어 우려도 나온다.

◇사회 보듬고 관통하는 신선한 시선

수상작 ‘수령인’(백금상)은 케이블 채널 OCN에서, ‘고물상 미란이’(금상) ‘아름다운 우리 여름’(금상) ‘덕후의 딸’(금상) ‘아들이 죽었다’(은상)는 tvN에서 방영됐다. 일반적인 토일 드라마 편당 예산의 3분의 1만 가지고도 신선한 메시지와 연출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단막극 '덕후의 딸' 속 모녀. 출판사에서 10여 년 일하다 드라마에 도전한 김민영 작가의 데뷔작이다. /스튜디오드래곤

서면으로 만난 다섯 작가에게도 사회를 보듬고 관통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신인답게 펄떡였다. 송정미(34) 작가가 쓴 ‘고물상 미란이’(금상)는 보육원에 버려져 아버지를 원망하고 살았던 주인공이 개를 유기한 아이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설득력 있게 그려진 작품이다. 김민영(43) 작가의 ‘덕후의 딸’은 엄마를 고깝게 생각하던 딸이 엄마 실종을 계기로 엄마 인생을 이해하게 된다. 송 작가는 “보이지 않는 사랑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이야기를 써서 이 시대 모두에게 위로를 주고 싶다”고 했고, 김 작가는 “엄마들이 세상과 벌여온 전면전을 응원하고 싶었다”고 했다.

사회 주변부를 조명해 재미를 넘어 의미를 남기기도 했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막내 여동생이 떠난 유가족 옆집에 여학생이 이사 오며 서로를 보듬게 되는 최하늘 작가의 ‘아름다운 우리 여름’을 비롯해, 가상 세계를 이용한 미제 사건 수사 프로그램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음주 운전의 죗값을 강렬하게 그린 이수진(32) 작가의 ‘아들이 죽었다’, 복권을 샀지만 미성년자라 돈을 찾지 못하는 가정 폭력 피해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김지은(32) 작가의 ‘수령인’ 등은 모두 지금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아름다운 우리 여름’ 연출자인 정다형 감독은 “작의(作意)의 새로움을 성원하는 것이 단막극”이라며 “시청률 너머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단막극 '아름다운 우리 여름'. /스튜디오드래곤

◇“지속 발전 위해 신인 유입 중요”

단막극은 신인 작가와 연출자의 등용문이자 K드라마의 실험장으로 역할해 왔다. 작가들도 단막극을 “데뷔 기회이자 현장을 배울 소중한 경험”(김지은)이라며 “드라마 편성 자체가 어려운 시기에도 대본이 세상 밖으로 나온 건 단막극을 방영해 준 채널이 있기 때문”(최하늘) “기회가 줄어들수록 신인 작가들의 진입 장벽은 분명 높아질 수 있으리라 생각”(이수진)한다고 입을 모았다.

K드라마의 지속 성장을 위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프닝’ 단막극 기획을 총괄하는 스튜디오드래곤의 김경규 PD는 “작가든 연출이든 처음부터 장편 상업 드라마를 잘 만들 수는 없다. 이들이 K드라마 산업의 버팀목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출발점 역할을 하는 것이 단막극”이라며 “제작사나 채널 모두 수익을 기대하면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업계와 시청자의 관심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