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지휘 김유원)이 올해 30주년을 맞은 SM엔터테인먼트의 히트곡들을 14~15일 오케스트라 편곡을 통해서 연주한 'SM 클래식스 라이브'. SM엔터테인먼트 제공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어학 연수를 온 노진(28)과 데비(26), 티파니(26)는 레드벨벳과 NCT를 좋아하는 K팝 팬이다. 이들은 지난 1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만났다. 서울시향(지휘 김유원)이 올해 30주년을 맞은 SM엔터테인먼트의 히트곡들을 관현악으로 편곡해서 연주하는 ‘SM 클래식스 라이브’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들은 “평소 즐겨 듣는 K팝을 클래식 음악처럼 들려주니 신선하고 새로웠다”고 했다.

레드벨벳의 ‘빨간 맛’, 엑소의 ‘으르렁’,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서울시향의 연주로 14일 예술의전당과 1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이틀간 울려 퍼졌다. 최근 국내 오케스트라들도 드라마와 영화, 게임 음악까지 분야를 넓히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향이 K팝 음악만으로 연주회를 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레드벨벳의 가수 웬디가 출연한 둘째 날 공연은 조기 매진을 이뤘다. SM엔터테인먼트의 초창기 아이돌인 H.O.T.와 동방신기부터 막내 걸그룹인 에스파까지 소속 팀의 상징들이 공연장의 벽면을 장식했다. 사회를 맡은 샤이니의 민호는 “K팝이 위대한 클래식 작곡가들의 음악 어법과 만나서 탄생한 오케스트라 음악은 지금과 먼 훗날의 클래식”이라고 기대를 표했다.

경쾌하고 감각적인 K팝과, 풍성한 화음과 색채감이 필수적인 오케스트라는 자칫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힘들 우려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날의 감상 포인트는 SM의 작곡가가 대거 참여한 편곡이었다. 첫 곡인 연주곡 ‘Welcome To SMCU PALACE’에 힌트가 숨어 있었다. 스트라빈스키의 현대음악부터 뮤지컬, 디즈니 애니메이션까지 여러 장르를 이어 붙이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레드벨벳의 ‘빨간 맛’이나 샤이니의 ‘셜록’은 다채로운 타악기와 금관 악기를 통해서 호쾌한 맛을 살렸다.

SM 히트곡들의 도입부마다 클래식 명곡을 인용해서 이질감을 지우는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레드벨벳의 ‘필 마이 리듬(Feel My Rhythm)’ 초반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가 흘렀다. 최근 시위 현장에서 자주 부르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도 미스코리아 시상식 같은 행사로 친숙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1번으로 시작해서 웅장함을 더했다. 특히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1악장 도입부 선율로 시작한 뒤 행진곡의 팡파르를 연상시키는 후렴구로 쉴 새 없이 변모한 엑소의 ‘으르렁’이 이날 편곡의 압권이었다. 다만 장르적 특성상 댄스 음악보다는 발라드가 잘 어울렸고, 웬디가 부른 2부에서는 오케스트라 편곡이 반주를 연상시켰다는 점은 과제로 남을 듯했다.

서울시향과 SM엔터테인먼트의 협업은 5년 전 시작됐다. 처음엔 ‘빨간 맛’ 같은 히트곡들을 연주한 영상들을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다. 조회 수가 수백 만에 이를 만큼 뜨거운 반응을 낳고 차곡차곡 음원과 영상이 쌓이자 결국 이번 음악회로 이어졌다. 서울시향도 반응이 좋은 편이다. 부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웨인 린은 “K팝의 댄스 리듬이나 창법을 오케스트라의 음색으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단원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이자 도전이 됐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K팝 30년 역사에 또 다른 물꼬가 트인 날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