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는 언제나 엉거주춤. 하지만 건반 앞에만 앉으면 무섭게 돌변한다. 18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임윤찬(20)의 협연 무대 역시 그랬다. 도이치 캄머 필하모닉(지휘 파보 예르비)과 협연한 곡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 ‘피아노의 시인’ 쇼팽이 갓 스무 살에 발표했던 청춘의 협주곡을 갓 스물의 피아니스트가 들려주는 셈이었다. 단 두 곡의 쇼팽 협주곡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연주 기회가 드문 편이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18일 도이치 캄머 필하모닉(지휘 파보 예르비)과 협연하고 있다. /빈체로

첫 악장부터 파격의 연속이었다. 과도한 탐닉에 빠져들기보다는 화려한 속주(速奏) 속에서도 간간이 견고한 저음을 드러냈다. 오케스트라 역시 현의 떨림을 뜻하는 비브라토(vibrato)를 한껏 절제해서 산뜻함과 날렵함을 더했다.

이날의 절정은 느린 2악장. 드문드문 정적을 가미하면서 숨죽인 채 피아니시모(아주 여리게)로 노래하는 듯한 모습에 피아니스트가 독창자로 변모한 것 같았다. 지난달 임윤찬이 뉴욕 필하모닉과 이 협주곡을 협연할 당시 뉴욕타임스(NYT)가 2악장에서 격찬을 아끼지 않았던 이유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시 NYT는 “이 악장은 성악 없는 오페라 아리아이며, 임윤찬은 훌륭한 성악가처럼 화려한 장식들이 형식을 흐트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음악의 길고 지속적인 중심 라인을 강조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고 평했다. 반대로 마지막 3악장에서는 분명한 리듬감을 통해서 춤곡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이후 그의 음반과 실연(實演)에 이처럼 호평이 쏟아지는 것도 분명 ‘청신호’다. 이날 앙코르로 임윤찬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가운데 첫 곡 ‘아리아’를 들려줬다. 내년 뉴욕 카네기홀 등에서 변주곡 전곡을 연주할 것이라고 이미 밝혔기에 일종의 짧은 ‘예고편’이 됐다. 흡사 자유분방하면서도 과감한 꾸밈음들을 통해서 선배 피아니스트들의 바흐와는 다를 것이라고 선언하는 듯했다.

독일 브레멘의 도이치 캄머 필하모닉은 악단 규모는 작지만, 고음악 연주 방식을 수용하는 진취성과 유연함으로 정평이 있다. 이날 후반의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 역시 단 38명의 단출한 규모로 연주했다. 대부분 현대식 악기를 사용했지만 트럼펫과 팀파니는 바로크 시대 스타일을 받아들이는 ‘절충주의적’ 해석을 선보였다. 역시 비브라토를 절제하고 가속 페달을 밟으면서 질주하는 모습이 ‘중형 세단’보다는 날렵한 ‘스포츠카’를 연상시켰다. 실내악단처럼 단원들과 일일이 눈 맞추며 지휘하는 예르비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작은 오케스트라의 큰 울림”(음악 칼럼니스트 양창섭)이라는 비유처럼 굳이 더 많은 단원이 필요해 보이지는 않았다. 임윤찬과 도이치 캄머 필하모닉의 협연은 17일 아트센터인천, 18~1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렸고 21일 대전예술의전당, 22일 롯데콘서트홀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