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7일 오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배우 故 김수미씨의 발인식이 엄수되고 있다. /뉴스1

지난 10월 25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고(故) 김수미(본명 김영옥‧1949~2024)가 30대부터 말년까지 솔직하게 써 내려간 일기가 ‘나는 탄원한다 나를 죽이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라는 책으로 12일 출간된다.

김수미는 생전 일기를 책으로 펴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이 책이 출간된 후 가족에게 들이닥칠 파장이 두렵다”면서도 “주님을 영접하고 용기가 생겼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제가 지금 이 나이에, 이 위치에 있기까지 제 삶의 철학을 알려주고 싶다”고 썼다.

김수미는 말년에 공황장애를 앓았다. 올해 1월 일기에는 “정말 밥이 모래알 같고 공황장애의 숨 막힘의 고통은 어떤 약으로도 치유할 수 없다” “공황장애, 숨이 턱턱 막힌다. 불안, 공포, 정말 생애 최고의 힘든 시기였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자기 이름을 걸고 식품을 판매하던 회사와의 분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심경도 일기에 남겼다. 그는 작년 10~11월 일기에서 “하루하루가 고문이다. 기사가 터져서 어떤 파장이 올지. 잠도 수면제 없이 못 잔다” “지난 한 달간 불안, 공포, 맘고생은 악몽 그 자체였다. 회사 소송 건으로 기사 터질까 봐 애태웠다”고 털어놨다.

김수미의 이름을 걸고 식품을 판매해 온 회사 ‘나팔꽃 F&B’는 회사 대표이던 아들 정명호씨를 해임한 뒤 김수미와 함께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고인은 이와 관련해 “주님, 저는 죄 안 지었습니다” “오늘 기사가 터졌다. 횡령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책 '나는 탄원한다 나를 죽이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출판사 용감한까치

일기장에는 삶의 고통만 담긴 것은 아니다. 일에 대한 애정도 빼곡히 기록했다.

1986년 4월 37살의 김수미는 “목숨을 걸고 녹화하고, 연습하고, 놀고, 참으면 어떤 대가가 있겠지”라고 다짐했다. 50대가 된 2004년에도 그는 “어제 녹화도 잘했다. 다시 데뷔하는 마음으로 전력 질주해서 본때를 보여주자”며 각오를 다졌다. 2017년 2월에는 “너무나 연기에 목이 말라 있다”고 했다.

1971년 MBC 공채 3기 탤런트로 데뷔해 최근까지 50년 넘게 배우 활동을 이어온 고인이 무엇보다 바라왔던 것은 화려함 보다는 평화로운 삶이었다. 그는 1986년 일기에서 “화려한 인기보다는 조용한, 평범한 애들 엄마 쪽을 많이 원한다. 적당하게 일하고 아늑한 집에서 자잘한 꽃을 심어놓고 좋은 책들을 읽으며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을 기다리고 싶다”고 바랐다. 2011년에도 “마지막 소원이 있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아니면 1층 담에 나팔꽃 넝쿨을 올리고 살아보고 싶다. 그러면서 글을 쓰고 싶다”고 소망했다.

유족은 김수미가 말년에 겪었던 고통을 옆에서 지켜봐 온 만큼 안타까운 마음에 일기를 공개했다며 책 인세는 전액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0일 고인을 대신해 시상식에 참석한 며느리 배우 서효림은 “어머님의 유품 중에 오래된 일기장 속에서 곱고, 여리고, 여자로서의 김수미의 삶을 엿보게 됐다”며 “많은 분이 애도해 주시는 만큼 잘 살아내면서 그 은혜를 꼭 갚겠다”고 했다.

고인은 지난 10월 25일 오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고혈당 쇼크에 따른 심정지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