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윤하(본명 고윤하·36)가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정규 7집 ‘그로우스 띠어리(GROWTH THEORY)’를 냈다. 직접 작곡과 프로듀싱에 참여한 총 10곡 중 타이틀곡 제목은 ‘태양물고기’. 2일 서울 중랑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개복치의 영문명 선피쉬(Sunfish)에서 따온 것”이라며 “앨범을 만들던 지난 1년간 해양 지식 유튜브 채널, 해양 다큐와 영화에 푹 빠졌다”고 했다. 개중 “16세 나이에 무동력 요트로 전 세계 해양을 항해하며 최연소 세계 일주 기록을 남긴 ‘제시가 왓슨’의 이야기에서 ‘바다를 항해하는 소녀’ 주제로 앨범을 그려보면 어떨까 싶었다”고 했다.
그는 또한 “개복치는 나약하다는 오해를 깨고 사실 배울 점이 많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고도 했다. “별일 없으면 20년 이상 장수하고 해저 800m 심해까지 헤엄치며 발광체도 가졌죠. 이 친구가 수면 위에 떠오르면 바다 위 뜬 태양 같아요. 마치 자기보다 큰 존재인 태양 빛에 낙담하는 게 아니라 ‘저 빛을 받아 나도 바다에서만큼은 태양이 돼야지’ 하는 것 같아 보기 좋았죠.” 그는 “우리가 현실과 이상을 똑바로 마주할 때 배워야 할 자세란 생각이 들었다”며 “타인의 잣대나 평가가 아닌 스스로 치열히 옳다고 여기는 길을 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앨범 전반에 담고 싶었다” 했다.
윤하는 2021년 낸 6집에선 우주를 주제로 한 노래 ‘사건의 지평선’을 선보였고, 1년 뒤 각종 음원 차트에서 역주행 인기를 끌었다. 그 덕분에 지난해 2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우주과학계 종사자들과의 간담회에서 5분짜리 연설 기회도 가졌다. “연락이 왔을 땐 ‘왜 나를?’ 싶어 깜짝 놀랐다. 이번 신곡으로 해양수산부와 수협에서도 불러주신다면 흔쾌히 가겠다”며 웃은 그는 “호주 여행을 가서 만난 맹그로브 나무가 이번 앨범의 첫 출발선이었다”고 했다. 아열대 습지에서 자라는 이 나무종은 탄소를 저장하는 습성을 가져 해양 생태계 지킴이로도 불린다. 윤하는 “맹그로브를 처음 봤을 때 느낀 장엄함, 고독함, 그리고 오랜 연식에서 오는 해탈함 등을 각종 악기 소리로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실린 첫 곡 ‘맹그로브’ 도입부는 재즈 콰르텟의 단조 연주로 열리지만, 마지막 곡 ‘새녘바람’에 이르렀을 때 7집을 관통하는 정체성은 결국 ‘윤하다운 밴드 사운드’다. ‘죽음의 나선’ ‘케이프 혼’ ‘은화’ ‘로켓방정식의 저주’ ‘코리올리의 힘’ 등 대중가요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난해한 제목들이 줄줄이 눈길을 끄는데 속내를 보면 대중적이고 경쾌한 록 밴드 연주가 가득하다. 개중에는 ‘라이프리뷰’와 같이 ‘삶과 죽음의 양면’을 고찰한 가사도 담겼다. 곡을 들은 한 팬의 반응은 “내 인생의 마지막 주마등이 흐를 때 틀고픈 곡”. 윤하는 “아버지와 존엄사에 대해 이야기하다 쓰게 된 곡”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이제 막 환갑 잔치를 치른 나이신데, 최근 갱년기가 오셨는지 자꾸 ‘내가 아파지면 너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결정을 하는 게 좋겠다’고 하세요. 그때마다 참 속상했고, 섣불리 내가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는 존엄사에 대해 고심하게 됐죠. 내가 만일 남겨진 사람의 입장이 된다면 뭐라 할 수 있을까란 생각으로 곡을 썼어요.”
지난 활동 20년 중 음악을 그만두고 싶을 때도 바로 이 정체성을 잃어버렸을 때였다. “2012년 정규 4집 ‘수퍼소닉’이 평단의 호평을 받았지만 직후 직접 세운 레이블(음반 기획사)이 와해됐고, 5년 5개월간 앨범을 못 내며 긴 슬럼프를 겪었다”고 했다. “라디오, 방송 활동은 꾸준히 했죠. 하지만 데뷔 초부터 팬들이 제게 건 기대는 ‘록 키드’였고, 그걸 앨범으로 돌려드려야 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극복 계기는 뜻밖에도 “그 시기 대출을 잔뜩 받아 산 한강 뷰 아파트”였다. “어느 날 방에 앉아 타일 한 장, 마루와 문고리 하나도 다 팬들이 사주신 건데란 생각에 뭐라도 계속 해보려고 두드려보게 되더군요.”
윤하는 2004년 16세 나이에 일본에서 곡 ‘유비키리(ゆびきり)’로 먼저 데뷔했고, 한일 양국을 바삐 오가며 보아와 함께 1세대 한류 영재로 주목받았다. 그의 오랜 팬들 중 일부는 아직도 무대 위에서 직접 피아노를 치며 ‘비밀번호486′ ‘혜성’ ‘기다리다’ 등 히트곡을 때로는 한국어로, 때로는 일본어로 부르던 ‘꼬마 윤하’의 모습으로 기억한다. 윤하는 “이젠 시간이 흘러 딸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30대가 되었다”며 “데뷔 초엔 나 자신을 잊을 정도로 정말 정신없이 바빴다. 만일 제 조카나 딸이 그때의 저처럼 활동한다고 한다면 막 짠하고, 불안하고, 그러면서도 또 대견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남은 음악 인생의 목표는 “조용필 선배님처럼 50년 이상 노래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가 되면 치아가 약해져 딱딱한 걸 못 먹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팬들에게 ‘게장비빔밥 디너쇼’를 열겠다는 약속도 했다”고 했다. 만일 자신의 가수 인생을 등산에 비유한다면 지금 위치에 이런 이정표를 꽂고 싶다고 했다. “’제가 있는 곳이 마치 등산 가다 보면 마주치는 ‘올라가는 곳’ ‘내려가는 곳’ 표지판이 있는 분기점 같아요. 거기다가 ‘올라가도 별건 없지만 기분은 좋음’이라고 써놓고 싶네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