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장 루돌프 회스의 아내 헤트비히는 “아우슈비츠의 여왕”으로 불린다. 담장 너머에선 포로들의 비명이 들려오지만, 헤트비히는 자신만의 왕국을 가꾸느라 여념이 없다. /찬란

이 영화는 시작되고 2~3분 동안 검은 화면이 계속된다. 컴컴한 극장에 갇혀 시각이 차단된 관객은 자연스럽게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텅 빈 공간에서 어둡고 음산한 전자음악이 울리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보이는 것이 아니라 들리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신호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를 다룬 영화지만, 유대인은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총지휘관이었던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의 그림 같은 집에 초점을 맞춘다. 꽃이 만발한 정원엔 다섯 아이가 뛰놀고, 볕이 좋은 날엔 온 가족이 호숫가에 놀러가 평온한 일상을 즐긴다. 이들의 낙원이 아름다울수록, 관객은 메스꺼움을 느낀다. 담장 너머 들려오는 총소리와 비명, 시체 소각장에서 뿜어내는 시커먼 연기가 화면 밖에서 벌어지는 학살을 상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Zone of Interest·관심 구역)’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둘러싼 40㎢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나치 독일은 수용소 주변 땅을 몰수해 포로에게 강제 노동을 시키고, 땅에서 나온 농작물을 팔아 돈을 벌었다. 그 중심에 있던 수용소장 회스는 유대인을 학살하는 악마가 아니라, 성실하고 다정한 아버지로 그려진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찬란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은 “가해자들을 다룬 영화는 많았지만, 마치 ‘우리와는 다른 인간들’처럼 이들을 그렸다. 이 영화는 가해자들과 우리가 비슷한 점이 뭔지 돌아보게 한다”고 했다. 악의 평범성을 고발하는 영화는 홀로코스트를 바라보는 방식을 뒤집으며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올해 아카데미 국제 장편영화상 등을 받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 이후 처음으로 아우슈비츠에서 촬영 허가를 받아냈다. 과거 사진과 도면을 참고해 실제 회스의 집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집을 재현했고,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박물관의 사료와 피해자들과 생존자들의 증언을 샅샅이 뒤졌다. 담장 너머에선 학살이 자행되고 있는데, 전출 명령을 받았다는 이유로 회스 부부가 투덜대고 싸우는 장면은 실제 회스의 집에서 일했던 정원사의 증언에서 비롯됐다.

실제 루돌프 회스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의 가족 사진. /위키미디어

올해 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유대계 영국인인 글레이저 감독의 수상 소감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유대인 정체성과 홀로코스트가 수많은 무고한 사람을 전쟁으로 몰아넣는 데 이용되는 것에 반대한다. 이스라엘 희생자든, 가자 지구의 희생자든 모두 비인간화의 희생자”라고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을 규탄했다. 이에 미국 홀로코스트 생존자재단 등 유대인 단체들이 분노하며 글레이저에게 항의하는 공개 서한을 발표했다.

감독은 “‘그들이 그때 무엇을 했는지 보라’고 말하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보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영화는 후반부에서 기발한 방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회스가 길고 어두운 통로 끝의 미래를 엿보는 순간, 관객은 서늘한 현실로 돌아온다. 평범하면서 공허한 회스의 얼굴은 지금 우리가 눈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다음 달 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