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56번째 레터는 17일 개봉하는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 오싹한 뉴욕’, 지난 10일 개봉한 양조위·유덕화 주연의 ‘골드핑거’ 등 2편입니다. 네, 한꺼번에 보내드립니다. 왜냐. 제가 지난주 수욜에 넋놓고 선거 방송 보느라 레터를 못 썼습니다. 죄송함다. ^^;; (정말 선거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더군요.)

그전에. 연극 뉴스이긴 하지만 영화판에도 매우 유의미한 최근 이슈 하나 먼저 던져보겠습니다. 요즘 웨스트엔트가 시끄러운데요, 스파이더맨과 나란히 캐스팅된 줄리엣 때문이죠. 무슨 소리냐고요. 관심 있으시다면, 따라와 보실까요.

내달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개막하는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두 주인공 톰 홀랜드와 프란체스카 아메우다 리버스.

일단 사진부터. 자, 왼쪽이 스파이더맨으로 유명한 배우 톰 홀랜드, 그리고 오른쪽이 톰과 나란히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에 캐스팅된 배우 프란체스카 아메우다 리버스입니다. 캐스팅이 발표되고 인터넷에 난리가 났습니다. “톰 홀랜드가 줄리엣인거냐” 등등 일반 기사 댓글은 물론이고 Reddit에서도 험악한 의견이 폭발했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며칠 전에 흑인 배우 800명이 프란체스카를 옹호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예상대로 “흑인 혐오를 멈추라”는 내용이더군요.

자, 이 지점에서. 저 여배우 캐스팅을 반대하는 게 과연 흑인을 혐오해서 그런 것일까요. 예를 들어 톰 홀랜드의 실제 연인인 흑인 젠데이아가 줄리엣에 캐스팅됐다고 치죠. 그러면 지금처럼 “톰 홀랜드가 더 줄리엣에 어울리겠다”는 말이 나왔을까요. 아마 ‘너무 잘 어울린다' ‘꼭 보고 싶다'며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지. 프란체스카 아메우다 리버스 캐스팅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 중 일부는 ‘흑인 줄리엣'이 무조건 싫어서 그러기도 하겠죠. 하지만 상당수는 “저 사람은 줄리엣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배우는 그 배역과 맞지 않다'고 하는 것을 죄다 인종 혐오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오히려 PC에 대한 반작용을 키우는 게 아닐런지.

작년에 디즈니 ‘인어공주’ 때 PC 논란 기억하시나요. 그때도 많은 이들이 그랬죠. “왜 흑인 여배우 중에서 유독 안 예쁜 배우여야 하느냐”, “왜 왕자는 꼭 잘생긴 백인 배우를 쓰면서 공주만 그렇게 캐스팅하느냐” 등등. 외모나 인종 혐오를 넘어선 ‘진정한 PC’를 실천하려면 ‘블랙팬더' 역에 잭 블랙 어떻습니까. (아마도 ‘화이트워싱’이라고 난리나겠죠.)

기존 개념을 깨는 캐스팅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지려면 무엇보다 실력이 뒷받침해줘야 합니다. 배우라면 연기력, 설득력이겠죠. 기존에 보던 배우들과는 다르지만, 와 새롭다, 저렇게도 보여질 수 있구나, 와 이런 느낌 첨이야, 하는 반응이 나와줘야죠. ‘무조건 받아들여'라는 우격다짐식 캐스팅 말고요. ‘인어공주’가 그런 실력을 보여줬는지는 흥행 결과가 말해줬죠.

무플보단 악플이라는 진리가 통했는지 ‘로미오와 줄리엣' 티켓은 2시간 만에 매진됐다고 합니다. 마케팅면에선 엄청난 성공이네요. 하도 잘 돼서 8월 웨스트엔드 폐막 이후에 뉴욕 브로드웨이로 옮겨가 공연할 예정이라는 기사도 나왔네요. 그런데 공연 홈페이지 들어가보니 톰 홀랜드 얼굴만 대문짝만하게 노출돼 있네요. 이거야말로 차별 아닌가요. 왜 캐스팅해놓고 다른 데도 아니고 공식 홈피 대문에서 없는 사람 취급을...

이제 중요한 건 실제 작품, 그녀의 연기력이겠습니다. 이때의 ‘연기력’에는 그녀를 캐스팅한 제작진의 연출력도 포함입니다. 외모로는 기존 줄리엣과 다르지만, 그 어떤 줄리엣보다 더 줄리엣 같은 모습으로 관객을 사로잡으면 됩니다. 바라보는 이들을 환호하게 하는 반전은 선거에서뿐 아니라 무대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니까요. 프란체스카 아메우다 리버스는 이번이 웨스트엔드 데뷔라고 합니다. 옥스포드대에서 음악을 전공했고, 이전 이력도 음악 쪽이 많던데, 과연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궁금하네요. 제가 휴가 날짜 맞춰 뉴욕 갈 수 있으면 브로드웨이 버전이라도 보고 레터 독자분들께 공유하겠습니다. 그전에 웨스트엔드 리뷰를 기다려보겠습니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 오싹한 뉴욕'. 오싹한 유령은 어디가고...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 오싹한 뉴욕'은 1980년대 레이 파커 주니어의 신나는 노래로 유명한 ‘고스트 버스터즈’의 후속작입니다. 지난 11일(목) 시사회를 했는데요, 네, 저도 졸고, 백수진 기자도 졸았습니다. 다 보고 나오는데 홍보 담당하시는 분이 출구에서 “어땠느냐”고 물으시더군요. 저의 첫 마디. “재미없었어요.” (답변은 두괄식으로.) ‘고스트 버스터즈' 원작이 가지고 있던 경쾌한 리듬과 신선한 아이디어는 간 데 없고 이것저것 갖다붙여놨는데 산만하기만. 빌 머레이가 깜짝 등장하는 장면은 잠시 반가웠으나 80년대 오리지널 멤버들과 현 멤버들 사이에 아무런 교감이 없어서 흥이 나질 않아요. 폴 러드처럼 코미디에 재능 있는 배우를 데려다가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는 건 확실히 감독 역량 부족으로 보였네요. 어마무시한 괴력을 가진 것처럼 등장하는 얼음대마왕이 나올 때는 ‘여기가 ‘반지의 제왕' 시사회장인가’ 싶었습니다. ‘고스트 버스터즈'의 독특한 그 분위기는 어디로.

최근 할리우드에서는 과거에 사랑받은 IP를 되살려보려는 몸부림이 이어지고 있는데, 극장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고 있죠. 이 역시 실력 문제인 것 같습니다. 확실하게 심폐소생술에 자신있는 제작진이 아니라면 고전은 건드리지 마시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승부를 보시는게 낫지 않을지. 미국에선 개봉 주말에 박스오피스 1위를 하고 쭉 하락했습니다.

영화 '골드핑거' 포스터. '양조위와 유덕화 무간도 이후 20년 만의 대결'이라며 기대를 부풀렸으나...

영화 ‘골드핑거'는 홍보 문구부터 기대를 절로 갖게 합니다. ‘무간도 이후 20년만의 강렬한 대결!’ 명배우 양조위와 유덕화, 거기에 무간도라는 명작까지 언급되니 어찌 기대감을 갖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강렬했느냐고요? 아니요, 아쉽게도.

영화에서 양조위는 사기와 뇌물로 부를 축적해 홍콩에 회사 200개를 거느리게 된 나쁜 재벌이고 유덕화는 그를 법망에 잡아가두려는 수사관입니다. 원래 양조위는 동남아에서 건축사로 일하다 빚더미에 앉으면서 거렁뱅이가 돼 홍콩으로 흘러들어오는데요, 영화가 재밌으려면 그가 어떻게 부를 축적하는지 그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보여져야 하죠. 그 과정에서 캐릭터가 드러나고, 캐릭터의 성공과 실패, 몰락까지도 관객이 저절로 따라가게 되니까요. 그런데 그 부분이 얼렁뚱땅이에요. 이 정도로 입지전적인 인물을 그렇게밖에 표현 못하다니. 양조위가 연기력으로 그나마 어느 정도 끌고가긴 하지만, 관객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양조위가 맡은 청이옌이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그의 꿈과 야심, 욕망과 결핍에 대해 알 수가 없습니다. 유덕화가 맡은 반부패 수사관도 너무 일차원적인 캐릭터라서 유덕화가 연기력으로 더 이상 어떻게 표현해볼 여지가 없어 보이더군요. 주변 인물이라도 입체적이어야 하는데 대부분 일회성으로 소모되고 맙니다. 카르멘이라는 이름의 여성 캐릭터가 특히 아쉽더군요. 훨씬 흥미진진하게 다룰 수 있었을텐데.

인물이 밋밋하면 상황이라도 갈등과 긴장으로 채워져야 하는데, 애초에 감독은 경제 범죄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아 보였어요. 대충 눙치고 가는 부분이 많았는데 아무리 영화적인 과장과 생략이라고 하더라도 의아한 부분이 자주 돌출돼 몰입하기 어려웠습니다. (홍콩 최고의 건물을 그렇게 쉽게 사들일 수 있으면 그 누가 못 사랴) 결국 양조위가 갈아입는 양복과 넥타이 위주로 보고 나왔습니다. 홍콩에선 주말 박스오피스 5주 연속 1위를 했다고 합니다. 양조위와 유덕화를 보고 싶어한 팬들이 힘이 아닐지.

큰 화제작이 드물었던 4월 극장가를 ‘범죄도시’의 강펀치가 깨울 듯 합니다. 내일 15일(월)에 ‘범죄도시4′ 시사회가 있습니다. 벌써부터 예매 1위인데요, 영화계에선 “범죄도시3보다 범죄도시4가 낫다더라”는 입소문이 작년부터 퍼져있었는데 실제 어떨지 궁금하네요. 마케팅팀이 열일해서 퍼진 소문인지 정말 그런지. 지면 상황 봐서 ‘그 영화 어때' 레터에서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그 영화 어때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