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숲속의 별장을 빌려 가족끼리 휴가를 즐기던 밤, 낯선 사람들이 대규모 정전 때문에 갈 곳이 없다며 문을 두드린다. 이들을 믿고 문을 열어줘도 될까. 넷플릭스 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Leave the world behind)’는 사이버 공격으로 미국의 국가 기반 시설이 마비되면서 벌어지는 재난 스릴러다. 8일 공개된 직후부터 14일 현재까지 넷플릭스 영화 부문 글로벌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줄리아 로버츠, 이선 호크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했지만, ‘오바마 부부가 만든 영화’로 더 주목을 받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미셸 오바마가 2018년 본인들이 설립한 제작사 하이어 그라운드 프로덕션을 통해 제작한 첫 극영화다. 그동안엔 어린이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에 집중해오다 이젠 극영화로까지 영역을 넓혔다.
미국 작가 루만 알람이 쓴 동명의 원작 소설은 2021년 오바마의 휴가철 독서 리스트에 담겼던 책이다. 이후 오바마가 영화 제작을 맡으면서 각본에 대해서도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샘 이스마일 감독은 버라이어티지와 인터뷰에서 “초안에선 더 극단적인 사건이 많이 일어났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대본을 보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 비상사태가 벌어졌을 때, 현실적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메모를 남겨줬다”고 했다.
영화의 중반까진 기발한 상상력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유조선이 별안간 모래사장으로 돌진하고, 집 밖엔 사슴 떼가 몰려오는 등 알 수 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대규모 정전으로 같이 집에 갇히게 된 두 가족은 ‘저 사람들을 믿어도 될까’ 끊임없이 의심한다. 타인을 믿지 못하고, 편견에 갇혀 소통하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은유다. 괴상한 일들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일 뿐, 위기 상황에서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균열하는 인간의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듯 비춘다.
하지만 중반부터 이야기가 산으로 가기 시작하더니, 벌여놓은 사건들을 수습하지 못하고 고꾸라진다. 쌓였던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고, ‘열린 결말’로 포장하며 맥없이 끝나버린다. 용두사미는 꾸준히 지적되는 넷플릭스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 글로벌 영화 평가 사이트 IMDb의 관객 평점은 6.6점. “영화관이 아니라 넷플릭스로 봐서 다행이다””뒷부분 촬영하는 걸 잊어버린 건가“”내 시간을 돌려받고 싶다” 등의 혹평이 달렸다.
박한 평가와 별개로 영화는 미국에선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전력망이 해킹당하면서, 테슬라 자동차가 말썽을 일으키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 9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테슬라 자동차가 등장한 장면을 공유하며 “테슬라는 전 세계가 완전히 매드 맥스처럼 변해 휘발유가 사라지더라도 태양광 패널을 통해 충전할 수 있다!”고 다급히 해명을 남겼다.
오바마의 제작사 하이어 그라운드 프로덕션은 넷플릭스를 통해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를 포함해 조만간 두 편의 영화를 더 공개할 예정이다. 넷플릭스가 2018년부터 갓 설립된 하이어 그라운드와 계약을 맺자, 할리우드에선 넷플릭스가 콘텐츠의 질보다 오바마의 이름값만 보고 계약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전까지 하이어 그라운드의 작품은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지만, 넷플릭스 차트 순위권 안에는 진입하지 못했다.
오바마는 최근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우리가 공영방송에 어울리는 콘텐츠만 만들지 않는다는 걸 할리우드에 알리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면서 “이젠 다양한 장르로 영역을 확장하는 단계”라고 했다. 앞으로 제작사를 육성하는 데 10~15%의 시간만 투자할 계획이라고 덧붙이며 “미셸과 나는 할리우드 거물이 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