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한 장면. 나미야 잡화점 주인 ‘나미야 유지’(오른쪽)와 그의 아들 ‘다카유키’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 측은 “작가 사진 게재를 희망하지 않는다”고 요청했다./IMDb

숫자를 통해 기억되는 작가는 많지 않다.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인 경우는 더욱 드물다는 점에서 일본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65)는 예외적 인물이다. 올 상반기 일본에서 소설 ‘마녀와 보낸 7일간(魔女と過ごした七日間)’을 내며, ‘책 100권 출간’이란 기록을 세웠다. 1985년부터 작품 활동을 해 왔음을 감안하면, 1년에 2~3권씩 책을 내 온 셈. 일본 내 발행 부수를 합하면 1억 부가 넘는다. 최근 소설 ‘매스커레이드 게임’(현대문학)의 국내 출간을 맞아, 서면으로 만난 게이고는 그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게 있어서 소설을 쓰는 것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고된 작업이지만, 어떤 아이가 될까 하는 즐거움도 큽니다.”

책이 30개 넘는 국가에서 출간되며 알려진 그의 이름은 한국에서도 하나의 현상이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게이고는 국내외를 통틀어 지난 10년간 소설이 가장 많이 팔린 작가 1위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다음이다. 추리소설로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갖춘 대표작이 다수다. 국내에는 나오키상(2006) 수상작인 ‘용의자 X의 헌신’이 책과 영화로 소개되며 본격 알려졌다. 주오코론문예상(2012) 수상작이면서 영화로 제작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국내에서 170만 부 팔리며 ‘힐링 소설’ 열풍을 이끌고 있다.

흔히 게이고의 작품에는 ‘이과적 상상력’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으나, 작가 자신은 그 한계에 갇히지 않는다. 오사카 부립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 엔지니어로 일하던 도중인 1985년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그는 일본에서 2005년 낸 에세이 ‘사이언스?’에서 “이과의 피가 흐르는 게 반드시 장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썼다. “과학적 무모순성에 너무 연연하면 대담한 발상이 나오지 않을 우려가 있다. 스스로 발상의 폭을 좁힐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초기 작품은 정교한 논리와 장치에 근거한 서사로 호평받았지만, 2000년대 전후부턴 추리와 인간의 내면, 사회적 주제를 접목한 이야기가 빈번해졌다. 전형적 추리소설의 패턴을 비튼 소설 ‘명탐정의 규칙’이나 수학 천재의 완전 범죄라는 소재에 ‘사랑과 헌신’이란 주제를 녹인 ‘용의자 X의 헌신’이 대표적이다.

최신작 ‘매스커레이드 게임’은 법적 처벌의 한계라는 현실과 ‘용서’라는 주제를 다뤘다. 기무라 다쿠야 주연의 영화로 제작된 ‘매스커레이드 호텔’로 시작된 시리즈의 4번째 작품. 게이고는 이번 책을 쓰며 “피해자와 유족들이 범죄자에게 바라는 것은 진정한 반성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었다”고 했다. 도쿄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피해자 세 명의 공통점은 과거 사람을 죽였음에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것. 이로 인해 오랜 시간 고통받은 유가족들이 한 호텔로 모이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작가는 한 유가족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살해하더라도 그건 형벌이 되지 않아요. 형벌에는 반드시 반성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책을 비롯해 게이고의 책을 30여 권 옮긴 양윤옥 번역가는 “결코 쉽지 않은 심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시종 재미있고 편안하게 읽히는 대중성을 놓치지 않는” 힘을 작가의 저력으로 꼽았다.

게이고는 추리소설부터 판타지 소재에 기반을 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다작의 비결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특별히 차별화를 의식하는 것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독자를 즐겁게 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하고, 떠오르는 아이디어에 가장 적합한 스타일을 선택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스타일을 쓸 수 있도록 도전했던 것이 지금에 와서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글이 한국에서도 사랑받는 비결에 대해선 “어렸을 때 저는 책을 잘 읽지 못했습니다. 그 시절의 저조차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라고 했다.

주오코론문예상 시상식 등에서 밝힌 그의 유년 시절 일화가 유명하다. 국어 성적이 좋지 않자, 담임이 어머니를 불러 ‘만화만 읽을 게 아니라 책도 읽을 수 있게 지도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답은 ‘만화도 안 읽는다’는 것. 책을 멀리하던 그는 고등학교 때 고미네 하지메 소설 ‘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를 읽으며 추리소설에 관심을 갖게 됐고, 뒤늦게 정해진 문학 교육 대신 글을 쓰며 소설을 공부했다.

게이고가 일본 에이전시를 통해 기자에게 건넨 숫자는 ‘5′이다. 5개의 질문만 받겠다고 했다. 단문에 눌러 담은 답변 중에서도 가장 짧은 것은 목표에 관한 것이었다. “새로운 대표작을 쓰는 것이 목표입니다.” 오로지 작품으로 승부하겠다는 마음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