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설가 아이사카 토마는 “독소 전쟁은 희생자가 많은 전쟁이면서, 여성이 저격수로 참여한 거의 유일한 전쟁이다. 이런 전쟁을 일본에서 소설로 다룬 적이 없다는 것에 의문을 갖고 책을 썼다”고 했다. /ⓒhayakawashobo

싸울 것인가, 죽을 것인가. 아이사카 토마(38)의 소설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다산북스)는 전쟁에서 피할 수 없는 이 오래된 질문을 독소(獨蘇)전쟁을 통해 풀어낸다. 정확히는 이분법처럼 보이는 질문 뒤에 보통의 ‘사람’이 숨어 있음을 보여준다. 1942년 독일군에 의해 어머니와 고향을 잃은 소련 소녀 ‘세라피마’가 저격수로 성장하는 이야기가 중심에 자리하고, 그 뒤에는 수많은 여성 군인들의 삶과 죽음이 교차된다. “여성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고 말하던 세라피마조차 누군가에겐 살인자일 뿐. 그는 100명을 죽이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 깨닫는다. “잃은 생명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우리가 흘려보냈을 시간 속엔 “반드시 사람이 있다”고.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는 아이사카의 첫 소설. 2021년 일본 애거사 크리스티 상을 받으며 출간됐다. 작년 일본서점대상 1위를 차지하고, 현지에서 50만부 이상 팔리며 큰 열풍을 몰고 왔다. 최근 책의 국내 출간을 맞아, 작가를 줌으로 만났다. 그는 “일본과 관련이 적은 독소전쟁을 다뤘기 때문에 책의 흥행을 예상하지 못했다. 이는 감사한 일이지만, 책이 출간된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일어나 마음이 굉장히 무거웠다”며 “전쟁이 악화된 것과 책에 대한 주목도가 올라간 것 사이에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마음의 빚을 털어놨다.

작가는 이 책이 ‘반전(反戰)소설’임을 명확히 한다. 과거 전쟁을 통해 ‘전쟁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라는 보편적 질문을 성찰하고, 패권주의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지켜보자고 말한다. 그는 집필 과정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독소전쟁에 참전한 소녀 병사들의 이야기를 구술로 기록한 책. 소설 역시 각 인물이 지닌 고유의 서사에 집중한다.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선 이름도 배경도 모르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제 책에 나온 것처럼, 수많은 사람의 죽음 뒤엔 각자의 배경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좋겠다.”

작가는 10년에 걸쳐 책을 썼다. 회사 인사과에서 직원들의 출퇴근과 월급을 관리하던 그는 퇴근 후 목욕을 하고 우동을 먹으면서 작가 지망생으로 변신했다. 매일 밤 집에서 2~3시간씩 펜을 잡았다. “프로가 되겠다고 생각했더라면 소설가가 되지 못했을 거다. 쓰는 것이 재미있었다. 10년 동안 다른 작품이 낙선된 적도 있지만, 그 경험도 즐겼다.”

전쟁은 작가의 오랜 고민이었다. “10대가 되기 전부터 전쟁과 무기를 싫어했다. 특히 자위대 해군으로 복무했던 제 할아버지를 2005년쯤부터 인터뷰하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전쟁 전과 후로 사람의 내면이 바뀌는 걸 경험했던 할아버지는, 전쟁이 절대 반복되면 안 된다고 자주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방문을 반대하고, 반전주의를 주장하셨던 분이다.” 그는 곧 다가올 ‘일본의 전후 80년’에 대해선 이렇게 책에 썼다. “한일 양국의 현대사를 말할 때 ‘일본의 패전’이라는 원점은 종종 대조적인 개념으로 여겨지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종언이라는 의미에서는 같을 것이다. 제국주의의 종언에 시작점을 둔 ‘전후 일본’이 계속 이어지고 한국과의 문화 교류가 끊이지 않고 지속되기를, 또한 제 작품이 그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 않는다.” 올해 하반기 일본에서 출간 예정인 차기작 역시 전쟁이 소재. 2차 세계대전 말기의 독일에서 군국주의에 반발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한국 독자들이 왜 독일이나 러시아 사람도 아닌 일본 작가가 자신과 상관없는 전쟁을 쓰냐고 물어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 독자와 일본 작가가 서로 관계가 없는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편견 없이 서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가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비롯해 한국 문화의 열렬한 팬이면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고 한다. 작가 역시 ‘쉬리’를 비롯한 영화와 드라마 ‘DP’ 등 한국 영상에 빠져 있다. “어머니가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사서 읽어 보실 것 같다. 제 책이 한국과 일본이 문화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는 데에 기여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