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제14회 런던 올림픽 선수단 파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했던 '올림픽 후원권'. /장영태씨 제공

대한민국은 1948년 런던 올림픽(7월 29일~8월 14일)에 50여 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정부 수립 직전이었지만 이미 5·10 총선거로 구성된 제헌의회에서 헌법을 제정(7월 17일)하고 이승만 대통령도 취임(7월 24일)한 상태였다. 태극기를 달고 처음 출전한 하계 올림픽은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코리아(KOREA)가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됐음을 알린 자리였다.

우리 대표단은 부산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배와 비행기, 기차를 갈아타고 상하이, 방콕, 테헤란, 로마 등을 거쳐 20일 만에 런던에 도착했다. 2억원에 달하는 파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1947년 12월 올림픽 후원권이라는 복권을 발행했다. 그중 한 장을 50년 이상 복권을 수집해온 독자 장영태(76)씨가 소장하고 있다. 액면가 100원. 당시 소고기 한 근이 260원쯤 했으니 만만한 금액은 아니었다.

복권에는 체육인 전경무(1898~1947)의 초상이 들어 있다. 전경무는 조선체육회가 1946년 7월에 구성한 올림픽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IOC 총회 참석차 스웨덴으로 가던 중 항공기 추락으로 사망한 그의 이력은 독립 국가 자격으로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서기 위해 해방 직후부터 기울여왔던 노력을 보여준다. 올림픽 후원회장은 조선일보 사장을 지냈던 민세 안재홍이었다.

후원권은 총 140만장을 발행해 10개 조로 나눠 추첨했다. 1등 당첨금은 조별로 100만원씩이었다. 1948년 4월 18일 자 조선일보에 따르면 ‘다’조 1등은 조흥은행 본점 후생부원이었고 ‘라’조 1등은 총 60장을 공동 구매한 중국요리점 태화관의 ‘뽀이’ 6명이었다.

올림픽 후원권은 ‘대한민국 최초의 복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장영태씨는 “정부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발행했기 때문에 그렇게 알려졌을 뿐 엄밀하게 말하면 최초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가 모은 복권 중에는 충북 지역 전재(戰災) 동포 구호를 위한 ‘행운권’(1947년 3월), 전북 이재민 주택건설 지원을 위한 ‘후생복표’(1947년 11월)처럼 시기가 앞서는 것들도 있다. 해방 직후의 혼란기에 지역별로 각종 구호사업 등의 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복권을 발행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도 복권기금의 65%는 저소득층·장애인 지원 등 공익사업에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