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퇴화된 한국구슬거미 암컷. /국립생물자원관

평생을 동굴 안에서 사느라 ‘눈’이 없어진 거미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됐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은 이승환 서울대 교수 연구진과 함께 지난해 2월 경남 합천군의 한 동굴에서 눈이 퇴화된 거미 신종 1종을 발견했다고 6일 밝혔다. 연구팀은 신종 거미가 빛을 받으면 영롱한 구슬처럼 보여 ‘한국구슬거미’(Telema coreana)라고 명명했다.

한국구슬거미의 가장 큰 특징은 눈이 없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거미의 눈은 8개이며 머리에 2~3줄로 배열돼있다. 그런데 신종 거미는 시력이 퇴화한 차원이 아니라, 아예 눈이라는 시각 기관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거미는 일생을 동굴 안에서 보내는 ‘진동굴성 동물’로, 동굴 입구에서 약 80m 들어간 곳에 살고 있다. 이렇게 어두운 동굴에서 평생 사느라 눈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다.

눈이 없으면 먹이는 어떻게 잡아먹을까. 한국구슬거미는 동굴의 벽 틈 등에 편평한 형태의 거미줄을 치고 매달려 산다. 눈이 없는 대신 다리의 감각 기관을 활용해 이동하거나 먹이를 잡아먹는다고 한다. 거미줄에 먹이가 걸려들었다는 정보는 진동으로 느껴서 안다.

보통 동굴의 온도는 섭씨 10도, 습도 95% 정도다. 한국구슬거미는 이런 일정한 서식 환경에 맞춰 몸이 진화했다. 몸의 크기는 약 1㎜ 정도로 작고, 습도로부터 체온을 유지할 수 있도록 8개의 긴 다리를 가졌다. 포식자가 없어 보호색이 아닌 매우 엷은 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빛을 비추면 몸과 다리에선 푸른빛이 반사된다.

눈이 퇴화된 한국구슬거미 수컷. /국립생물자원관

한국구슬거미는 한국에서 기록된 첫 구슬거미과 동물이기도 하다. 연구진은 한국구슬거미를 연내 ‘국가생물종목록’에 신종으로 등록하고 관리할 예정이다.

다만 연구진은 생물 보호 차원에서 한국구슬거미가 발견된 동굴명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신종 발견시 사람들이 몰려들어 채집하는 등 생태계가 망가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서민환 국립생물자원관장은 “이번 발견은 우리나라 생물주권 강화를 위한 기초 성과 중 하나”라며 “동굴성 무척추동물의 본격적인 조사·연구 활성화는 물론 동굴 보전·관리에도 이바지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