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더 참고 기대립시다 승리의 날은 곳 옵니다”
경기 수원시 독자 최희수(67)씨가 가지고 있는 6·25전쟁 당시의 ‘삐라’(전단)에는 이런 제목이 달려 있다. 대한민국 공보처 명의로 된 전단에선 지금과는 표기법이 다른 말들도 눈에 띈다. “인제는 우리가 받은 또 현재에도 받고있는 이 고통은 최후의 승리로 직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꾸준한 인내력과 용기를 다시한번 간절히 바라 마지않읍니다”라고 적었다. 국군이 후퇴를 거듭하는 동안 삶의 터전을 잃고 고통받았던 국민에게 동요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내용이다. 전쟁은 전선(戰線)에만 있지 않았다.
최희수씨는 “해방 후 북한 함흥에서 월남해 공무원 생활을 했던 아버지의 유품에서 전단을 발견했다”면서 “우리 다음 세대에 당시의 시대상을 알릴 수 있는 자료라는 생각이 들어 버리지 않고 간직해왔다”고 했다.
날짜는 적혀 있지 않지만 단서가 될 만한 표현이 나온다. “대구 지구에서는 시방 왜관 북방으로 ‘유·엔’군과 우리 국군은 압력을 가하고 있읍니다” “인천 근해에 있는 여섯 섬에는 벌써 영국 함대의 협력을 얻어 충용무쌍한 우리 국군이 적전상륙을 하였읍니다”. 낙동강 방어선을 어렵게 사수한 국군과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은 1950년 9월 전후로 추정된다. 최희수씨도 “6·25 발발 직후의 삐라”라고 했다.
현재 여러 박물관 등에 남아 있는 6·25 당시의 삐라 중에는 미군이 북한군·중공군을 대상으로 뿌린 것이 많다. 제공권을 장악했던 미군과 유엔군은 삐라도 항공기로 대량 살포했다. 투항을 권유하거나 공산주의 체제의 모순을 지적해 적군의 전의를 꺾는 심리전이다. 이와 달리 이 삐라는 우리 정부가 후방의 민간인을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전선에서 싸우는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들의 사기(士氣)를 유지하는 일도 절실했음을 보여준다.
국사편찬위원회의 ‘미국 소재 한국사 자료 조사보고’에는 “전쟁 초기 한국군은 선전 활동을 담당할 인원이나 확성기조차 보유하고 있지 못했다. 따라서 초기 한국군의 주 선전은 후방의 민간인을 대상으로 사기와 충성심을 고취하는 데 맞추어졌다”는 내용이 나온다. 최희수씨의 삐라는 이런 서술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