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한 건달부터 자애로운 국왕까지, 한국에서 이병헌만큼 넓은 스펙트럼의 역할을 소화하는 배우도 드물 것이다. 이번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대지진 이후 아파트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억센 주민 대표 역을 맡았다. 21일 열린 제작 보고회에서 이병헌은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바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재난 영화보다는 재난 이후 사람들이 어떻게 극한 상황을 이겨나가는지를 보여주는 휴먼 드라마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8월 개봉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는 류승완 감독·김혜수 주연의 ‘밀수’, 김용화 감독·설경구 주연의 ‘더 문’과 함께 올여름 성수기를 책임질 대작 중 하나다. 대지진으로 서울의 모든 건물이 붕괴하고,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몰려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해외 바이어들의 호평을 받으며 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는 물론 멕시코·브라질 등 남미까지 전 세계 152국에 선판매됐다.
이병헌이 캐스팅되자 박서준·박보영 등 인기 배우들이 먼저 러브콜을 보냈다. 방범대장 역을 맡은 배우 박서준은 “이병헌 선배의 팬이라 꼭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제작 보고회에서도 이병헌의 연기에 대한 칭찬이 끊이질 않았다. 배우 박보영은 “‘이상한 기합 소리를 낸다’라는 지문 한 줄이 있었는데 100가지 버전을 준비한 것처럼 계속 바꿔가면서 상상하지도 못한 연기를 보여주더라”고 했다. “한번은 앉아서 같이 농담하다가, 촬영이 시작되니 10초 만에 분노에 찬 눈빛으로 변하시더라고요. 저는 눈을 갈아낀 줄 알았어요(웃음). 잠깐 사이에 어떻게 저렇게 변하지….”
공개된 예고편에서 이병헌은 촌스러운 패딩에 뻗친 머리, 거칠거칠한 얼굴로 “아파트는 주민의 것”을 부르짖는다. 이병헌은 “촬영 전에 분장팀과 캐릭터의 겉모습을 만들어가는데, 왠지 이 캐릭터는 두껍고 뻣뻣한 머리카락에 M자 탈모가 막 시작되는 그런 외양일 것 같았다”고 했다. “영화 속에선 리더지만, 현장에선 제가 제일 선배라고 앞서서 이끌어가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솔직히 현장에선 제 연기 고민하기에 바쁘고, 제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 됐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이들이 목숨 걸고 지키려는 ‘황궁아파트’는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실제 건물을 짓듯 미술팀이 3~5개월 걸려 3층짜리 아파트를 지었다. 이병헌은 “처음 보고 실제 아파트를 3층까지만 남기고 부숴놓은 줄 알았다”고 했다. 엄태화 감독은 “아파트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자,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하고 익숙한 공간”이라면서 “애증의 대상이자 한국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아파트가 주요 배경이라는 점이 다른 재난 영화와 차별되는 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