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동명 웹툰을 바탕으로 제작된 한일 합작 OTT 드라마 ‘커넥트’ 촬영장에서 배우 정해인(왼쪽)과 일본인 감독 미이케 다카시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기적이라 할 정도의 한·일 합작이 됐는데,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드라마 ‘커넥트’(Connect) 주연배우 정해인은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연결하다’라는 제목의 의미처럼, 제작 방식이 독특한 드라마다. 신인류의 탄생을 그린 한국 동명 웹툰을 소재로, 일본 장르 영화 거장 미이케 다카시가 연출했으며, 출연진은 고경표·김혜준 등 한국 배우이기 때문이다. 정해인은 “나라와 언어 장벽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로 비상이 걸렸지만, 화상회의 등을 활용해 소통했다. 미이케는 “미지의 세계를 접한 느낌이었다”면서도 “스트레스 없이 일본에서보다 더 원활하게 촬영했다”고 말했다. 드라마는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회사 디즈니플러스가 전 세계에 송출하고 있다.

문화 콘텐츠 합작을 통한 한일 양국의 신(新) 협력 시대가 움트고 있다. 드라마부터 아이돌 가수 육성까지 영역도 확산 중이다. 국내 첫 한일 합작 아이돌 TV 오디션 프로그램도 탄생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케이블채널 SBS M이 방송하는 ‘더 아이돌 밴드: 보이즈 배틀’이다. 한국의 FT아일랜드, 일본의 간카쿠 피에로 등 양국 가수들이 프로듀서로 참여해 두 나라 멤버로 구성된 K팝 밴드를 만드는 것이다. K팝부터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OST 등을 변주해 부르는 J팝 미션 등이 진행됐다. 간카쿠 피에로 보컬 요코야마 나오히로는 “음악을 향한 사랑이 국적을 초월한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4일 생방송 결승전에서 최종 데뷔 멤버가 확정된다.

세계적 콘텐츠 강국으로 도약한 한국, 전통의 만화 강국 일본의 합작도 진행형이다. ‘은하철도999′ ‘드래곤볼’ ‘세일러문’ 등 전설적 히트작을 낸 일본 최대 애니메이션 회사 도에이 애니메이션과 한국 기업 CJ ENM은 함께 신규 콘텐츠를 제작해 양국 및 전 세계에 동시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CJ ENM 관계자는 “일본은 한류의 중심을 이룬 주요 시장이자 우수한 대중문화 원자재를 다수 보유한 국가”라며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K콘텐츠와 함께 아시아를 대표하는 장르이기에 협업의 시너지를 기대한다”고 했다. 도에이 측 와시오 다카시 총괄프로듀서는 “한국 콘텐츠는 스토리와 세계관으로 놀라움을 주지만 일본 콘텐츠는 아마추어 주인공의 성장 서사에 시청자를 몰입하게 하는 차이가 있다”며 “두 나라의 특징을 융합하면 지금까지 없던 흥미로운 콘텐츠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최종 선발 멤버를 모아 실제 K팝 아이돌 가수로 데뷔시키는 한일 합작 오디션 프로그램 ‘더 아이돌 밴드’에서 양국 참가자들이 공연하고 있다. /SBS 미디어넷

순정만화 풍 국산 웹툰 ‘플레이, 플리’는 올해 일본 OTT 회사 훌루(Hulu)의 오리지널 드라마로 제작된다. 훌루를 운영하는 HJ홀딩스가 한국 제작사와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측 제작사인 플레이리스트 관계자는 “한국 배우가 한국말로 진행하는 드라마”라며 “한국 문화에 대한 높은 인기가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네이버웹툰은 지난해 5월 일본 지상파 방송국 TBS 등과 손잡고 서울에 웹툰 제작사 ‘스튜디오 툰’을 설립했다. 합작 법인에서 신작 웹툰을 제작하면 이를 TBS가 영상화해 일본 시장에 선보이는 전략으로, 양국의 역량을 모아 향후 세계시장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다진다는 복안이다.

속속 구독층을 넓혀가는 여러 한일 부부 유튜버나,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관객 1위 등극을 목전에 둔 ‘슬램덩크’의 인기에서 드러나듯 대중문화에서 반일(反日) 감정은 옛말이 됐다. 재미의 힘 덕분이다. 특히 한국 개그맨 김경욱이 일본인 접대부로 변장해 어눌한 한국말을 선보이는 ‘다나카’ 캐릭터는 고무적이다. 유튜브를 통해 4년간 활동했지만, 지난해부터 인기가 시작됐고, 최근 발매한 ‘와스레나이’(忘れない)는 금영노래방에서 10여 년간 일본 노래 부문 1위였던 엑스재팬의 ‘Endless Rain’을 제쳤다. 한국인이 연기한 일본인의 일본어 노래가 한국 노래방을 접수한 것이다. 다나카는 곧 일본 유명 TV 토크쇼에도 출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