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이 세 날에만 누군가의 탄생을 기린다. 석가탄신일, 크리스마스, 그리고 2월 11일 경록절.’ 음악을 좋아하는 마포구 홍대 주민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농담이다. 경록절은 물론 달력에 없다. 하지만 대중음악계에선 2005년부터 밴드 크라잉넛 멤버 ‘한경록’의 생일 때마다 뮤지션들이 축하 공연을 여는 홍대 대표 명절로 불려왔다.
경록절이 판을 키워 돌아왔다. 하루짜리 잔치에서 ‘마포 르네상스’란 닷새짜리 예술 축제가 된 것. 지난 8일 홍대 공연장 왓챠홀에서 개막식을 했고, 오는 12일까지 음악, 미술, 문학, 과학, 건축 등 다양한 분야 120팀의 온·오프라인 공연과 전시를 선보인다.
한경록은 본지 통화에서 경록절에 다채로운 행사가 추가된 이유로 “팬데믹 시기 공연을 쉬면서 인문학에 푹 빠진 영향”이라고 했다. ‘마포 르네상스’란 새 이름도 홍대를 넘어 다양한 문화를 쉽게 접하는 ‘한국의 피렌체’처럼 만들어보겠다는 마음으로 지었다. “유럽 문화를 꽃피운 르네상스와 그 속에서 좌충우돌 행보를 보인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푹 빠져 그의 평전도 찾아 읽었다. 나 역시 홍대 인디 문화의 태동기를 겪어 그 시기에 친근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최근 경록절 행사 제작을 위한 후원 문구도 다음과 같았다. “한국의 메디치 가문이 되어주세요.”
경록절은 홍대 인디 문화를 토닥이며 함께 성장해 왔다. 2005년 홍대 음악 클럽과 인디 공연 문화가 댄스 클럽 부흥 등에 밀려 부침을 겪을 때 주변 음악인을 초대해 홍대 치킨집에서 연 소소한 파티가 그 시작이었다. “경록이가 쏜대”란 입소문이 김창완(산울림), 김수철, 라쎄 린드 등 다양한 국내외 뮤지션을 끌어모으며 자연스레 흥겨운 공연 날로 성장했다. 지난해 팬데믹으로 멈춘 무대를 대신 만들어주자며 기획한 ‘온라인 경록절’은 미국, 영국, 일본, 러시아 등에서 80여 팀이 모여 18시간 논스톱 비대면 공연으로 이어졌다.
“장난처럼 시작한 생일잔치가 진짜 축제가 되니 쑥쓰럽고 부담도 된다. 사실 얘(경록절)가 여기서 더 커지면 급격히 늙을 것 같다”며 한경록이 웃었다. “조용한 생일도 좋지만, 이젠 저만의 날이 아니란 의무감이 생겼어요. 기왕 판이 커졌으니 다양한 아티스트가 함께 즐기는 축제로 잘 자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