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도살풀이춤 이정희, 살풀이춤 진유림, 태평무 박재희, 나비춤 동희 스님, 채상소고춤 김운태, 덧배기춤 이윤석, 승무 임현종(고 임이조의 아들) /축제의 땅

23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 전통 춤 큰 판이 선다. ‘소리가 춤을 부른다’는 승무와 태평무, 산사(山寺)의 나비춤, 농사꾼의 덧배기춤, 유랑광대의 채상소고춤을 한 무대에 모은다. 나비춤의 동희 스님, 태평무의 박재희 등 당대를 대표하는 꾼들이다.

주인공은 비구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전승교육사 동희 스님. 불교 의식 영산재 중 느리고 고요한 ‘나비춤’으로 유명하다. 조계종은 2022년 비구니 중 최초로 동희 스님을 어산어장(불교 의례를 집전·관장하는 최고 책임자)에 임명했다. “비구니가 영산재 이수자가 된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문화재 당국으로부터 6번이나 지정을 거부당한 끝에 이수자가 됐듯이, 조계종 유리 천장까지 깬 것이다.

동희 스님 /축제의 땅

◇동희 스님의 나비춤

7일 스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주변이 절간처럼 고요했다. 서울 청량사라고 했다. 동희 스님은 평소에 절에서 생활하며 청량사·진관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염불과 범패를 수행으로 합니다. 하는 것에만 집중했지 아무 욕심이 없었어요. 스승님(송암 스님)이 계속 이수자에 올리셨을 뿐, 저는 떨어져도 상심하지 않았습니다. 어산어장이 됐지만 기쁘질 않아요. 진관사 수륙재도 집전해야 하고 오히려 더 부담이 됩니다.”

동희 스님은 1950년 6·25 때 전쟁 고아로 청량사에 맡겨져 출가했다. 어릴 적 어깨너머로 범패를 배웠고 절 마당에 낙엽으로 숨긴 냄비 뚜껑 2개와 칡뿌리를 들고 남이 볼세라 산꼭대기에 올라가 바라 소리를 흉내 내다 내려오곤 했다.

나비춤은 어떤 춤일까. “도량을 정화하는 것”이라며 스님이 덧붙였다. “요즘처럼 힘든 세상을 맑게 한다는 의미가 있어요. 옷자락이 나비 날개 같다 해서 중생들이 붙인 이름입니다. 원래 작법(作法·법을 짓는다)이라 해요.”

악보도 없고 무보도 없다. 스님들을 통해 구전과 몸으로 내려왔다. 동희 스님은 “평가하는 기준은 없고 보는 분들이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포교하러 해외에 좀 나가 봤는데, 외국인들은 ‘그 몸짓이 뭔지 모르겠는데 네가 팔을 올리는 순간 눈물이 난다”고 그래요.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 거예요.”

◇승무·태평무 춤꾼은?

2023년은 임이조 명무의 10주기가 되는 해. 전통 춤 발전에 공을 세웠고 이매방 문하에서 배워 임이조류를 낳을 만큼 다양한 춤을 보유했던 선생을 춤판의 서두에 추모한다. 아버지에게 배워 걸출하게 성장한 아들 임현종이 승무를 춘다.

동희 스님이 혼을 불러들이는 창혼(唱魂)을 부른다. 고인과 이매방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진유림이 살풀이춤을 춘다. 11대에 걸친 세습무 정영만의 구음(口音)과 시나위 음악에 맞추어 살풀이의 의미를 배가한다. 이후 동희 스님이 나비춤으로 극장과 춤판을 티끌 없이 정갈하게 마친다. “관객이 그 순간이라도 마음을 정화하셨으면 해요. 승려로서 작은 몸짓이지만 그날 보는 분들 마음에 크게 다가가서 뭔가를 간직하실 계기가 된다면 좋겠어요.”

박재희는 춤의 소외 지역인 충청을 무용계 본류에 오르게 한 춤꾼이다. 태평무는 장단이 어렵기로 유명한 도당굿장단으로 추는데 처음에는 장구와 가야금, 느리게 시작하지만 나중엔 복잡하고 현란한 장단으로 변해간다. 사람들을 들뜨게 한 장단 위에서 흥을 내재한 채 흔들림 없는 고요를 유지하는 춤사위가 일품이다.

‘난장 최고의 입담’을 가진 진옥섭이 연출·해설을 맡았다. 마지막에는 소리꾼 장사익을 만날 수 있다. 이름 없이 판을 떠돌던 시절의 벗들이 모인다는 소식에 ‘봄날은 간다’ 한 자락을 들려준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전승교육사 동희 스님. 이번 무대에서는 10분 길이의 나비춤을 춘다. /축제의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