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의 원작에 바탕한 영화 ‘단순한 열정’. 발레리노이자 배우 세르게이 폴루닌(왼쪽)과 라에티샤 도슈가 남녀 주인공을 맡았다. /영화사 진진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프랑스·벨기에 합작 영화 ‘단순한 열정’(2월 1일 개봉)은 지난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여성 작가 아니 에르노(82)의 동명(同名)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 1991년 출간된 원작 소설과 마찬가지로 외국 외교관인 연하 유부남과 나눴던 밀회 경험을 고스란히 담았다.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는 작가의 지론은 자신의 불륜일 때조차 예외가 없었다. 상대 남자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혀 지하철역을 놓치고, 정사의 흔적을 간직하기 위해 샤워마저 미루는 일화까지 원작은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어쩌면 그렇기에 ‘치정(癡情)’이라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묘사 수위 역시 원작 못지않다. 성애(性愛) 장면은 물론, 남녀 전신 노출도 수차례 반복된다. 활자의 예술인 문학이 영상 매체인 영화로 옮겨졌을 때 배가되는 직접성 때문에 자칫 불편함이 들 수도 있다. 국내 상영 등급은 당연히 청소년 관람 불가.

레바논 감독 다니엘 아르비드가 아니 에르노 작품을 각색해 만든 영화‘단순한 열정’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영화는 2020년 9월 토론토 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하지만 국내 개봉을 앞둔 현 시점에서 복기했을 때 결과적 실착이 두 가지 있다. 시대적 배경과 캐스팅이다. 우선 소련 붕괴 직전의 냉전 말기라는 원작 배경을 21세기 현 시점으로 옮겼다. 그러다 보니 파리 주재 외교관인 상대 남성 알렉산드르(세르게이 폴루닌) 역시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아니라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는 러시아 대사관 직원으로 엉뚱하게 바뀌었다.

공교롭게 남자 주인공 역을 맡은 러시아 발레리노 겸 배우 세르게이 폴루닌(33) 역시 실제로 어깨와 가슴에 푸틴의 문신을 새긴 극렬 지지자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에는 푸틴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서방 공연이 취소되기도 했다. 한국이 지각 개봉이지만 그 시차를 감안하더라도 ‘온몸이 문신투성이인 친(親)푸틴 외교관을 사랑하는 프랑스 여주인공’이라는 영화 설정에는 공감대의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는 가슴의 푸틴 문신을 분장으로 가렸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에르노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자기 고백적 성격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은 구성 방식 역시 아쉽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불륜을 고백하는 여주인공의 초반 독백 장면은 인상적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다소 진부한 치정극으로 전락한다. 원작은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과 작별하면서도 동시에 간직하고자 하는 작가의 모순적 몸부림에 가깝다. 이별 직후 시점에 과거를 돌아보는 방식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영화는 현재적 시점에 머무느라 그 애절함까지 온전하게 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