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이 고은 시인의 문단 복귀를 비판했다. 그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이라는 아홉 글자를 올렸다. 성 추문과 법적 소송 이후 5년 만에 새 시집을 내면서도 사과 한 마디 없는 원로 시인을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그 시집을 펴낸 출판사 ‘실천문학사’의 이름도 아울러 꼬집은 것으로 보인다. 최 시인은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시집 출간 소식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됐다. 심정은 한 마디로 허망하다”며 “내 의견이 궁금하다면, 나중에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고은, 최영미/조선일보DB

고은 시인은 최근 이 출판사에서 신작 시집 ‘무의 노래’와 대담집 ‘고은과의 대화’를 냈다. 2017년 12월 시집 ‘어느날’ 출간 이후 약 5년 만의 공식적인 문단 복귀다. 그는 2017년 말 최 시인이 계간지 ‘황해문화’에 발표한 시 ‘괴물’을 통해 자신의 성 추문을 폭로하면서 활동을 사실상 중단했었다. 그는 국내 언론에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영국 일간 가디언에 “아내와 나 스스로에게 어떤 부끄러운 짓도 하지 않았음을 밝혀둔다”며 성추행을 부인한 바 있다.

신작 시집과 대담집에 성 추문과 관련된 언급은 없었다. 고은은 시집의 서두에 “시집 ‘초혼’과 ‘어느날’이 나온 뒤로 5년이다. … 쓰기와 읽기로 손과 눈이 놀았다. 거의 연중무휴로 시의 시간을 살았다”고 적었다. 캐나다 정치철학자 라민 자한베글루와 고은의 대화를 엮은 대담집은 이미 인도에서 출간된 것을 국내에 번역해 내놓은 것이다. 360쪽 분량으로, 시인의 생애와 작품 세계에 대한 문답을 실었다. 책 출간과 관련해 입장을 듣고자 지난 9일 고은 시인 측에 이메일을 보냈으나, 12일까지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한편 출판사 ‘실천문학사’가 고은의 문단 복귀를 주도한 과정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작년 말 출간된 계간지 ‘실천문학’ 겨울호 ‘김성동 작가 추모 특집’에 실린 고은의 시와 관련해서다. 실천문학사 윤한룡 대표가 겨울호 편집주간인 구효서 소설가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추모 특집과 고은의 시 수록을 결정했다고 한다. 실천문학사는 고은 시인 등이 주도한 자유실천문인협의회(한국작가회의의 전신)가 기관지 ‘실천문학’을 발간하면서 출발했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는 실천문학사의 책을 불매하겠다는 글도 올라오고 있다.

두 시인 사이의 법적 공방은 2019년 일단락됐다. 최영미 시인은 시 ‘괴물’로 고은의 성 추문을 최초로 폭로했고, 언론 등을 통해 고은 시인이 1992~1994년 술집에서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고은 시인은 최영미 시인 등이 허위 사실로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