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강남에서 만난 전광렬(왼쪽)·박수진씨 부부. 이들은 “아이들은 어릴 때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면 커가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을 갖게 된다”며 “우리가 인종과 국경을 떠나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싶은 건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고운호 기자

아이는 종종 어른의 기대를 뛰어넘는다. 드라마 ‘허준’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배우 전광렬(62)씨와 아내 박수진(52) 브이알루(VRLU·VR플랫폼 전문 기업) 대표의 하나뿐인 아들 동혁(26)씨도 그랬다. 타고난 그림 실력을 살리기 위해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예술학교인 영국 햄프셔주 비데일스스쿨로 유학 간 아들은 부모가 전화로 안부를 물어도 “잘 지내요”라고만 답했다. 그사이 동혁씨는 학교 선생님 인솔로 반 친구들과 함께 장애인학교인 홀리워터스쿨에 갔다가 봉사활동에 빠져들었다. 수업이 일찍 끝나는 수요일이면 습관처럼 매주 그곳에 가 모자란 도움의 손길을 보탰다. “내가 남들보다 가진 게 많다는 걸 느꼈다. 할 수 있는 만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갔다.

전씨 부부는 1년이 지나서야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어른도 선뜻 하기 어려운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던 중학생 아들이 기특했다. 마침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서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 함께 봉사활동을 하러 가자는 제안이 왔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1948년부터 전 세계 아동들이 존중받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아동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지원 사업을 전개해온 단체다.

부부는 고심 끝에 동혁씨도 데리고 2010년 3월 서아프리카 대서양 연안에 있는 라이베리아로 갔다. 이 나라는 과거 미국이 남북전쟁 기간 해방 노예들을 아프리카로 역(逆)이민시키면서 건설한 식민지였기 때문에 원주민과 이주민 간 갈등이 첨예했다. 결국 1989년 내전이 발발했다. 전씨 부부가 방문했을 땐 도합 10여 년에 걸친 1·2차 전쟁이 종식(2003년)된 후였지만 전화(戰禍)가 할퀴고 간 참상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내전 당시 강제로 총을 들었던 소년병들은 어른들이 건넨 마약에 취해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거리를 쏘다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있으면 약탈했다. 자기편에 가담하지 않으면 부역자로 몰아 살해했다. 전씨는 “그러니 애들이 내전이 끝나도 고향으로 못 가고 묘지에서 자면서 대소변 그득한 바다에 들어가 해초라도 건져 먹으려고 안간힘을 썼다”며 “수많은 난민이 심각한 영양실조로 매일 죽어나갔다”고 했다.

전씨 가족은 동행한 봉사활동 팀원들과 빈민촌 곳곳을 다니며 선물로 가져간 크레파스와 스케치북 등으로 함께 그림을 그렸다. 아이들이 위생적인 환경에서 뛰어놀 수 있도록 마을 구석구석을 소독했다. ‘코리안 빌리지’로 선정된 ‘폴리타운’에선 아이들을 초청해 전씨가 미리 익혀 간 마술 공연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전부터 10명 넘는 소년·소녀가장의 대학 등록금을 책임지는 등 후원을 해왔던 부부에 2012년 4월 아들이 가세해 정식으로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가족홍보대사가 됐다. 재단엔 40명 남짓한 홍보대사들이 있지만, 가족 전체가 발로 뛰는 경우는 이들 가족이 유일하다.

전씨 가족은 2012년 8월엔 한의사들과 함께 내란이 일어난 이라크에 가서 ‘허준 병동’을 열고 폭격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현지 주민들과 아이들을 돌봤다. 2012년부터 세 사람이 힘을 합쳐 가족 자선 행사인 ‘행복한 하루’를 개최했다. 행사장 대관과 출연진 섭외는 물론 콘서트 프로그램 구성과 홍보까지 온 가족이 팔을 걷어붙였다. 가족은 행사 수익 3억6000여만원을 전액 소외계층 아동 돕기에 내놨다. 전씨는 “궂은날인데도 기꺼이 행사에 와줬던 700여 손님, 저희들 제안에 공감하며 동참을 약속해준 지인들에게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 한가득”이라면서 “비록 코로나로 최근엔 잠시 중단했지만, 기회만 된다면 다시 행사를 열어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현실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기부란 ‘건강한 삶에 대한 가치’예요.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했더니 저한테 되돌아오더군요. 제가 어떤 일을 하면 그냥 행복해져요. 제 마음에 위안이 많이 생겨요.”(전씨)

“봉사활동 하면서 만난 아이들과 지금도 계속 연락하고 지내요. 아이들이 커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게 참 뿌듯해요. 꿈과 희망엔 국경이 없어요. 인종도 없고 다 똑같죠. 우리가 심어주고 싶은 건 사랑과 관심이에요. 그래서 그 아이들이 커 나가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감과 믿음을 갖기를 바랄 뿐입니다.”(박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