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웅’의 법정 장면. 안중근(정성화)은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등 이토를 저격한 이유 15가지를 당당하게 밝힌다. /에이콤

동지인가 적(敵)인가.

윤제균 감독의 영화 ‘영웅’이 개봉하는 21일, 원작 뮤지컬 ‘영웅’도 마곡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개막한다. 1909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이 거사를 도모하던 때부터 사형 판결을 받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마지막 1년을 담은 이야기. 배우 정성화는 스크린에서도 안중근, 무대에서도 안중근을 연기한다.

영화 ‘영웅’ 투자 배급사 CJ ENM 측은 “같은 시기에 공연하는 뮤지컬 ‘영웅’은 영화 홍보와 흥행에 득이 될 것”이라고 장담하지만 뮤지컬은 사정이 다르다. 1만5000원이면 볼 수 있는 영화와 달리 최고 15만원(VIP석)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날도 추운데 구태여 마곡까지 가서 ‘비싼 정성화’ 보느니 집 근처 영화관에서 보지 뭐” 하는 심리가 제일 무섭다. 영화에는 없는 뮤지컬 ‘영웅’의 매력 네 가지를 추렸다.

'영웅'에서 안중근을 연기하는 정성화. "내 노래는 독창과 합창을 합쳐서 10곡 가까이 되는데 사형대에서 부르는 '장부가'가 가장 어렵다. 촬영장에서는 하루에 열세 테이크를 찍었다. 무대에서는 표정 연기 없이 노래와 감정에 집중하면 되기 때문에 한결 쉽다." /에이콤

◇편집이 아닌 라이브

영화는 촬영 중 가장 좋은 테이크를 골라내 이어 붙여 만든다. 그래서 감독의 예술이다. 반면 뮤지컬은 현장 예술이라 배우의 매력이 극대화된다. 정성화·양준모·민우혁이 안중근을 나눠 맡는다.

안중근과 독립군들이 단지 동맹을 하는 자작나무 숲, 게이샤(일본 기생)로 위장해 일본에 침투한 명성황후의 궁녀 설희, 하얼빈역의 의거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안중근 목에 밧줄이 걸릴 땐 객석도 숨을 멈춘다. 어머니가 보내온 수의를 입은 안중근이 ‘장부가(丈夫歌)’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은 가슴 철렁한 효과음을 떨어뜨리고 암흑에 갇힌다.

윤제균 감독과 배우 정성화, 김고은, 나문희 등이 영화 '영웅' 언론시사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스포츠조선

◇영화보다 14곡 많은 노래

영화 ‘영웅’은 뮤지컬 ‘영웅’의 골격과 노래를 사용하지만 전부 다 옮길 수는 없었다. 뮤지컬은 영화에 없는 ‘내가 기다리는 것’ ‘오늘의 이 함성이’ 등 14곡이 더 많다. 총 31곡을 오케스트라(지휘 김문정) 연주와 함께 더 큰 부피감으로 감상할 수 있다. 뮤지컬 제작사 에이콤의 윤홍선 대표는 “1900년대 초 청년들의 감정을 서정적이고 모던한 음악으로 표현한다”며 “다양한 캐릭터들의 성격과 특징을 음악적으로 반영해 영화보다 친절하고 풍성한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원작 뮤지컬을 여러 번 보고 감동해 눈물을 흘린 윤제균 감독은 영화 ‘영웅‘의 안중근으로 배우 정성화를 고집했다. 투자자들은 정성화가 안중근을 연기하는 것을 반대했다. 윤 감독은 “이 작품을 가장 잘 아는 배우가 정성화이고 노래 실력은 대체 불가능하다고 끝까지 설득했다”고 했다.

영화 '영웅'에서는 원작에 비해 설희(김고은)의 비중이 더 크다. 이토 히로부미에게 접근해 첩보를 빼내는 설희는 명성황후와도 연결 고리가 있다. /CJ ENM

◇창의적이고 스펙터클한 무대

영화 ‘영웅’은 무대에선 구현할 수 없는 광활한 스케일과 영상미, 주연 배우의 클로즈업이 강점이다. 거꾸로 말하면 뮤지컬은 무대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긴장·이완의 몰입감을 주는 연출과 조명, 매끄러운 장면 전환으로 이야기를 굴려야 한다.

가장 창의적인 볼거리는 기차. 실물과 특수 영상을 접목하는데 “진짜 기차가 공연장으로 들어오는 줄 알았다”는 찬사를 받은 무대 디자인(박동우)이다. 기차가 눈발을 뚫고 만주 벌판을 달리는 장면에서 기차 내부가 드러날 땐 미닫이문을 활용했다. 기차가 하얼빈역에 도착하는 장면은 CG(컴퓨터 그래픽) 영상과 실물 기차를 바꿔치기하는데, 암전(暗轉) 없이 순식간에 이뤄져 마술에 가깝다.

뮤지컬 '영웅'의 자작나무숲에서 안중근과 독립군들의 합창 /에이콤

◇역동적 군무와 앙상블

뮤지컬 ‘영웅’에선 영화에 없는 군무와 앙상블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웅장한 무대를 누비며 철근 구조물에서 펼치는 추격 장면은 대담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누가 죄인인가?”가 메아리치는 법정 장면의 안무도 잔상이 길다.

영화가 뮤지컬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 묻자 정성화는 “영화를 보고 뮤지컬이 궁금해 찾아오는 관객이 많을 것”이라며 “그동안 무대에서 강력한 안중근이었다면 이젠 강약을 조절하면서 부드러운 안중근으로 다가가겠다”고 말했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맘마미아’ ‘시카고’ ‘레미제라블’ 등 21세기에 나온 뮤지컬 영화들은 원작과 차별화된 영상미와 매력으로 사랑받았고, 뮤지컬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 윈윈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영화 ‘영웅’도 원작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자극해 뮤지컬 흥행에 시너지가 기대된다”고 했다.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을 연기할 배우 정성화, 양준모, 민우혁과 음악감독 김문정이 이끄는 오케스트라 /에이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