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오디션에 두 번 떨어졌어요. 아직 실력이 부족하니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이 뮤지컬은 세 번째 공연인데 칼을 갈고 나왔어요. 이제야 무대에서 걸음마를 뗀 기분입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연출 오루피나)의 배경은 경제공황이 깊은 1933년 뉴욕. 연출가 줄리안 마쉬가 새로운 쇼 ‘프리티 레이디’를 올린다는 소식에 배우들이 환호하고 코러스(앙상블)를 뽑는 오디션이 열린다. 왕년의 스타 도로시 브록이 다리를 다친 틈을 타 시골 출신 무명 배우 페기 소여가 여주인공으로 성공하는 이야기다.
줄리안 마쉬를 연기 중인 배우 송일국(51)은 29일 “드라마에서는 정점을 찍었고 이젠 뮤지컬에 계속 도전하며 조금씩 발전하는 중”이라며 “애국가와 독립군가만 부르던 사람인데 이 작품을 하고 한 옥타브가 올라갔다”고 말했다.
외증조부는 독립운동가 김좌진, 외조부는 조폭 출신 정치인 김두한이다. 송일국은 “배우는 자유로운 영혼이어야 하는데 집안에 그런 분들이 계셨다는 게 단점일 수 있다”면서도 “그래도 잘 살아주신 덕을 내가 본다”고 했다. 대한·민국·만세 2012년생 ‘삼둥이’ 아빠로도 유명한 그는 “요즘 방송에선 나를 부르지 않는다. 육아 때문에 TV도 집에 없다”고 덧붙였다.
송일국은 촬영한 공연 영상을 보면서 따로 연습한다. 둔한 배우라 남보다 몇 배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송일국은 “어머니(김을동)와 아내, 여동생 등 가족이 가장 어려운 비평가들”이라며 “전에는 카리스마 있는 역할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배우로서 한번 더 껍질을 벗은 느낌이에요. 연습하며 울어보긴 처음입니다. 마지막 장면에 여주인공 페기 소여에게 ‘넌 이제 승자야. 100만분의 1을 뚫고 스타가 된 거야’라고 할 때, 25년 전 신인 시절의 나를 생각하며 대사를 쳐요(웃음).”
스스로 지목한 약점은 가창력. ‘브로드웨이의 자장가’도 부르기 너무 어려운 노래라고 했다. “목표는 홍광호의 가창력입니다. 하하. 이번 공연에서 스스로 세운 목표는 85점인데 한 번도 70점을 넘은 적이 없어요. 커튼콜 때 늘 미안하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송일국은 ‘브로드웨이 42번가’를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작품이라고 했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이 지금 우리 현실과 비슷하고, 누구나 좋아하는 성공 스토리이며, 쇼 뮤지컬의 교과서라는 게 매력”이라고. 이 공연을 위해 두 달 동안 12㎏을 감량했다는 그는 “줄리안 마쉬가 탭댄스를 추는 장면은 없지만 전회 매진되면 커튼콜 때 탭댄스를 보여드리겠다”고 공약했다. 공연은 내년 1월 15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