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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시네마 클래식’은 영화와 음악계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는 ‘이야기 사랑방’입니다. 오늘은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다큐멘터리인 ‘슈퍼 에이트 시절’ 이야기입니다.
“책 하나로는 바라는 만큼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82)에게 어울리는 영화 장르가 있다면 단연 다큐멘터리일 것이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는 쓴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작가의 지론처럼 소설은 그녀의 삶이었으니까. 지난 7일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서 국내 공개된 ‘슈퍼 에이트 시절(The Super 8 Years)’은 에르노의 삶을 담은 자전적 다큐멘터리다.
이 영상은 그저 작가의 삶을 기록한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작고한 전 남편 필립 에르노가 1972~1981년 직접 촬영한 영상을 바탕으로 이들 부부의 아들인 다비드 에르노 브리오(54)가 연출을 맡았다. 작가 에르노 역시 공동 연출뿐 아니라 직접 내레이션까지 맡아서 화자(話者) 역할을 하고 있다. 작품 제목인 ‘슈퍼 에이트’은 전 남편이 사용했던 8mm 카메라의 이름이다. 이를테면 온 가족이 매달린 가내 수공업 같은 작품인 셈이다.
다큐의 상당 부분은 이들 가족의 일상이나 여행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이들의 행선지는 영국·스페인은 물론이고 냉전 당시 공산권이었던 소련과 알바니아,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와 남미 칠레까지 아우른다. 하지만 행복했던 옛 시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일 것이라는 짐작은 다큐 속 작가의 육성을 통해서 조금씩 깨져 간다.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괴로웠던 시절이었다” “학교 수업이 없는 날이면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몰래 글을 썼다.” 가사 노동과 육아라는 의무와 작가적 열망 사이의 내면적 충돌은 점차 파열음을 일으킨다. 1981년 소설 ‘얼어붙은 여자’에서도 작가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안시에서 날마다 그와 나의 차이를 경험했고, 옹졸한 여자의 세계에 빠졌고, 자질구레한 걱정들로 질식할 것 같았다. 고독. 나는 가정의 수호자, 식구들 생필품과 유지보수 담당자가 되었다.”
연대기적 구성을 택한 이 다큐의 화면에도 이들 부부의 거리감은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다큐 초반에 작가 에르노의 얼굴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아마도 카메라를 들고서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뒷모습만 잡히거나 주변으로 밀려난다. 가정 불화가 불거지는 후반부에 이르면 영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부부의 얼굴이 아니라 여행 장소들이다. 결국 이들 부부는 1980년대 두 아들과 영상을 남긴 채 결별했다. 작가는 전 남편이 남기고 떠난 영상을 보면서 “오래된 기억을 우리에게 버렸다”고 말한다. 비통한 구절인데도 정작 작가의 육성은 담담하기 이를 데 없다.
작가 에르노의 회고처럼 ‘추억의 파편’인 영상들을 모아서 완성한 ‘가족의 자서전’이다. 에르노의 초기 시절을 엿보는 동시에 ‘자전적 경험에 충실한 작품을 쓴다’는 지론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물. 글이 아니라 영상에서도 에르노는 역시 에르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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