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본 척 지나가도 상관없지만 우연히 마주치면 ‘어텐션(attention. 주목)’하고 싶어지는 세상 이야기를 칼럼니스트 김도훈이 매주 금요일 얼큰하게 풀어냅니다. 가끔은 조금 매울 수 있습니다.

요즘 나는 새로운 걸 그룹에 빠져 있다. 얼마 전 데뷔한 ‘뉴진스’라는 그룹이다. 뉴진스는 4세대 걸 그룹이다. 자, 그렇다면 걸 그룹 역사에 관심 없는 당신을 위해 약간의 역사적 설명을 해야만 할 것 같다. 1세대 걸 그룹은 1990년대 후반에 나온 S.E.S와 핑클이다. 50대 이상 독자도 두 그룹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당신은 이효리가 핑클 출신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

2세대 걸 그룹은 2000년대 중반에 등장했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대표적이다. 당신은 충분히 이 글을 따라오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원더걸스의 대표곡 ‘Tell Me’의 주요 멜로디 정도는 따라 부를 수 있을 테니까. 3세대는 2010년대 등장한 블랙핑크와 트와이스다. K팝이 마침내 국제 시장에서 대폭발을 일으킨 시점에 등장한 걸 그룹들이다.

그렇다면 4세대는? 2010년대 말에서 2020년대 새롭게 등장한 4세대 걸 그룹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에스파, 스테이씨, 르세라핌, 엔믹스 그리고 뉴진스. 이 중 단 하나의 이름이라도 구분할 수 있다면 당신은 걸 그룹 과몰입 중장년 팬으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다. 뉴진스는 BTS 소속사 ‘하이브’가 내놓은 걸 그룹이다. 나는 당신이 그들의 데뷔곡 ‘어텐션’을 유튜브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을 지금이라도 만끽하기를 바란다. ‘아유 요즘 걸 그룹 노래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복고적인 노래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장담한다.

얼마 전 나는 뉴진스 영상을 찾아보다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막내 멤버는 열다섯 살이다. 그는 가장 처음 쓰기 시작한 스마트폰이 아이폰 11이라고 말했다. 처음으로 본 드라마가 ‘태양의 후예’라고 했다. 아이폰 11은 2019년에 나왔다. ‘태양의 후예’는 2017년작이다. 나는 스티브 잡스가 처음 발표한 시점부터 아이폰을 쓰기 시작했다. 기억 속 첫 드라마는 김수현의 ‘사랑과 진실’이다. 나는 이처럼 어린 걸 그룹에 과몰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간지 지면에 써도 괜찮은 걸까.

그러다 나는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하나 읽고 충격에 빠졌다. 팝가수 마돈나의 데뷔 앨범 발매 연도가 2022년보다 2차대전에 더 가깝다는 글이었다. 직접 계산해보니 정말 그랬다. 그렇게 따져보면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발매일은 2022년보다 한국전쟁에 더 가깝다. 나는 한국이 전쟁의 상흔을 딛고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현대적 명곡을 내놓기까지의 세월보다 더 긴 세월을 살아온 것이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옳았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그 법칙을 이제야 깨달은 나는 시간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부끄럼 없이 4세대 걸 그룹에 열광하기로 결심했다. 뉴진스 멤버들과 핑클의 ‘내 남자 친구에게’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적 거리가, 나와 혜은이의 데뷔곡 ‘당신은 모르실 거야’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보다 더 멀다는 사실 같은 건 절대 소리 내 말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런 건 아재 팬의 비밀로 남겨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