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의 진은영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티저 영상 한 장면. 저자의 낭독 음성을 활용하는 등 방식이 다양해졌다. /문학과지성사

어둑한 밤 골목길에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어항에 물방울이 떨어지며 그 속에 담긴 물이 찰랑인다. “별들은 벌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영상 속 여성은 말이 없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시인 진은영. 그가 자신의 시 ‘청혼’의 구절들을 읊었다.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이하 문지)는 최근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 이런 내용의 1분 52초짜리 영상과 글을 올렸다. “#문지상영회 #출간예고…9월 1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9월 출간되는 진은영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사전에 홍보하기 위한 것. ‘물’ ‘죽음’ 등 시집의 이미지를 암시하는 영상에 시인의 목소리를 입혔다. 작년 말 소설가 임솔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시도. 문지 이광호 대표는 “소셜미디어를 통한 출판사들의 신간 홍보가 범람하는 와중에 영상에 익숙한 젊은 독자들을 사로잡을 방법을 고민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팬들이 많은 문인의 신간을 위주로 영상 제작 횟수를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출판사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문학 팬심을 잡고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기존에는 출간 전후 완성된 표지 사진과 글을 통해 문학 신간을 홍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할 뿐 아니라, 표지 선공개, 서평단 모집 등 이벤트를 통해 길게는 출간 한 달 전부터 꾸준히 홍보하는 경우가 많다.

한글 제목을 크게 반영해달라는 독자 의견을 반영한 김영사 웹소설 ‘전지적독자시점’ 양장본의 변경 후(왼쪽) 표지 사진. 출판사 은행나무가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정유정 장편 ‘완전한 행복’ 예약 판매 공지 사진(가운데)과 장강명 장편 ‘재수사’ 티저 포스터. /김영사·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최근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장강명 장편소설 ‘재수사’를 출간 약 한 달 전부터 수차례 홍보해 왔다. “가제본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실제 표지도 기대해주세요.” “표지를 최초로 공개합니다. 기대평을 댓글로 달아주면 기프티콘 드립니다”와 같은 글을 올리는 식. 은행나무는 최근 몇 년 사이 소설가 정유정 등 인기 문학 작가의 신작이 나올 때 사전 홍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은행나무 이진희 이사는 “인문 등 다른 분야와 달리, 문학 독자들은 팬덤이 있기 때문에 출간 전부터 온라인에서 기대감을 높여야 출간 직후 작품을 빠르게 베스트셀러에 안착시킬 수 있다”며 “소셜미디어 홍보는 출판사가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홍보 방식 중 하나”라고 했다.

다만, 사전 홍보로 팬심을 잡으려다 출간 계획을 바꾼 경우도 있다. 김영사는 오는 9월 출간되는 인기 웹소설 ‘전지적독자시점’ 양장본의 표지 디자인과 가격 등을 지난달 선공개했다. 그러나 트위터, 전화 등으로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 ”한글을 더 크게 써달라” 등 항의를 받았다. 결국 양장본 3권 세트의 가격을 12만6000원에서 11만8500원으로 낮추고, 표지 디자인도 한글을 크게 키우는 식으로 바꿨다. 김영사 관계자는 “아이돌 앨범을 공개하듯 실험적으로 공개한 것인데, 웹소설을 사랑한 분들이 상상했던 그림과 달랐던 것으로 본 것 같다”며 “팬들의 반응이 일리 있다고 판단해 서로 ‘윈윈’하는 방향으로 다시 준비했다”고 말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요즘 출판계 화두는 ‘도대체 독자는 어디에 있는가’인데, 인기 작가의 신작을 사전에 홍보함으로써 마치 팬클럽 같은 분위기를 내고 책의 독자를 미리 확보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며 “앞으로도 출판사와 독자가 이런 식으로 소통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