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서효인이 대표로 있는 서울 마포구 안온북스 출판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시를 쓰고, 시를 통해 누구를 만날 땐 시인이지만, 그 순간을 제외하면 직장인”이라고 했다. /김지호 기자

시인 서효인(41)이 시집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문학동네) ‘거기에는 없다’(현대문학)를 잇따라 냈다. 대산문학상 등을 받은 세 번째 시집 ‘여수’(문학과지성사) 이후 5년 만의 시작(詩作). 시인은 “시집을 읽고 ‘소주 당긴다’는 반응이 많아 좋았다. 와인을 좋아하는데 소주라니! 과거나 근황을 얘기하면서 술잔 기울이는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는 시인을 닮은 ‘나’가 내면을 노래한 시 49편을 묶었다. 여수 등 공간을 중심으로 공적 역사와 개인의 경험을 겹쳐 보여줬던 전작과 다른 시도. ‘거기에는 없다’는 그런 ‘나’의 과거를 추적하며 죄의식의 원천을 파고드는 시들을 모았다.

시인에게 이번 시집들은 실험과도 같다. “진흙탕에서 구르면서 현실의 나를 더 고발하는 시를 쓰고 싶었어요. 시집마다 다른 콘셉트를 보여주고 싶었고, 제 삶이 더 바빠진 탓도 있죠. 두 딸의 아빠가 됐고, 출판사를 차리며 일이 더 바빠졌어요. 시간적 여유가 없다 보니 시에 대한 생각도 더 직관적으로 된 것 같아요.” 시적 화자와 시인이 동일 인물처럼 읽히는 것이 의도. “아마 ‘서효인 같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제가 아니면서 맞기도 해요. 그게 시의 재밌는 부분이죠.”

‘나를 닮은 것이 태어나는 날에 나는/ 그녀의 머리맡에 있었다 포도껍질처럼/ 쭈그러진 모습으로 벌레가/ 꼬이듯 지은 죄들이 떠올라 무서워 허공을/ 휘저어보았다’(버건디) ‘내게는 큰딸이 있다 큰딸은/ 드라마로부터 나를 구원해주는 신이다…/ 장애인은 티브이에 잘 나오지 않는다…’(드라마틱)

가족을 소재로 한 시들이 많다. 그는 가장 아끼는 시로 ‘드라마틱’을 꼽았다. “큰딸이 다운증후군이거든요. 무작정 딸을 예뻐하는 마음이 아니라, 부모로서 복잡한 마음을 쓴 시입니다. 나의 아이를 시에 쓴다는 건 위험한 일이고, 쿨하지 않은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더 드러내려다 보니, 저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더 등장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갈수록 시 쓰는 게 어렵다는 시인. “첫 시집은 마냥 즐거웠는데, 갈수록 고통스럽고 허우적대는 기분입니다. 시집 권수만 늘려 나가는 게 두려워요. 자기 갱신을 못 하면 시를 그만 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