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대한극장 매표소 앞에 조조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이 줄을 서 있다. /박돈규 기자

17일 오후 12시 40분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 매표소 앞에 모처럼 10여 명이 줄을 섰다. ‘조조(早朝)’로 저렴하게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이었다. 이른 아침도 아닌데 왜 조조냐고? 대한극장은 지난 2월부터 영업시간을 낮 12시~저녁 9시로 단축했다. 그래서 오후 1시쯤 시작하는 각 상영관 1회 차는 조조 요금을 받는다. 평일에는 7000원, 주말엔 8000원이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대기업 멀티플렉스에서 이 시간대에 영화를 보려면 평일 1만4000원, 주말 1만5000원(일반 상영관 기준)을 내야 한다. 대한극장은 반값인 셈이다. 이른 아침의 정의를 바꾼 것은 기발한 영업술일까? 아니다. 생존 투쟁에 가깝다. 종로3가 서울극장은 1년 전 폐업했고 을지로3가 명보아트시네마는 지난해 12월 31일 문을 닫았다. 한국 영화의 상징 충무로에서 1958년 개관한 대한극장은 2022년 여름을 영업 단축과 ‘오후 1시 조조’로 버티고 있다.

지난 12일 대한극장에서 만난 조인숙(61·서울 마장동)씨는 남편, 딸과 함께 영화 ‘헌트’를 관람했다. 금요일 오후 1시 조조라 총관람료는 2만4000원. 조씨는 “집 근처에 CGV가 있지만 대한극장에 오면 교통비를 뽑고 돈을 번다”며 “어제도 여기서 ‘탑건: 매버릭’을 봤다”고 말했다. 남편은 “40년 단골인데 손님이 적고 쾌적해서 좋지만 이러다 문을 닫을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서울극장 등 50년 넘은 극장들의 폐업은 코로나 사태와 관객 급감,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OTT)의 약진 등 산업 생태계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명보아트시네마를 운영한 허은도 대표는 “대한극장을 제외하면 서울 사대문 안에 있던 극장들은 폐업하거나 대기업 멀티플렉스로 넘어갔다”며 “매표 수입으로는 임차료를 감당하기도 어려웠다”고 했다. 낙원상가에 있던 허리우드극장은 옛날 영화를 틀어주는 실버 영화관(55세 이상은 관람료 2000원)이 됐다.

대한극장은 지하 1층부터 지상 7층까지 상영관이 11개(2700석)다. 인터넷에는 ‘아직도 조조가 7000원인 대한극장 사용설명서’가 돌고 있다. 리모델링 후 20여 년 지나 시설은 좀 낡았지만 가격 경쟁력이 전국 최강이고, 예술영화관도 있어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며, 흥행작도 쉽게 자리를 구할 수 있고, 충무로역과 연결돼 접근성도 좋다는 내용이다.

대한극장은 지난해 부산 소재 중견 기업인 우양산업개발로 주인이 바뀌었다. 극장 외벽에 ‘아들의 이름으로’ ‘화이트 온 화이트’ 등 작년에 개봉한 영화 포스터들이 걸려 있을 만큼 관리가 안 되는 상황이다. 현재 ‘한산: 용의 출현’ ‘비상선언’ ‘탑건: 매버릭’ ‘헤어질 결심’ 등 19편을 상영 중이다. 박스오피스 1위 ‘헌트’도 조조 상영이 291석 중 약 40석만 판매될 정도로 빈자리가 많았다.

충무로 대한극장. 작년에 개봉한 영화 포스터들이 걸려 있을 만큼 관리가 안 되는 상황이다. /박돈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