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호 기자

“깜깜할 때는 멀리서 어딘가 불빛이 하나 보이기만 해도 위로가 되잖아요. 이 책이 작은 불빛이 됐으면 합니다.”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롱리스트(1차 후보)에 올랐던 박상영(34)이 연작소설 ‘믿음에 대하여’(문학동네)를 내놨다. 코로나 대유행, 부동산 가격 폭등 등으로 불안해진 세상이 배경.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 확진자 동선 공개를 걱정하는 동성애자, ‘내 집 마련’에 목매는 30대 등이 주인공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상영은 “예기치 않았던 상황에 의해서 영원할 거라고 믿었던 것들이 모두 산산조각 나는 과정을 그렸다”면서 “계획하지 않은 대로 흘러가는 인생일지라도, 그것을 붙잡고 살아가면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번 책은 ‘대도시의 사랑법’(창비) ‘1차원이 되고 싶어’(문학동네)를 잇는 ‘사랑 3부작’의 마지막 작품. 전작처럼 퀴어가 소재이지만, 온도는 사뭇 다르다. 10~20대의 불 같은 사랑 대신, 내 집 마련, 밥벌이 등에 대한 고민과 맞물린 사랑을 그렸다.

코로나 대유행 과정에서 느낀 공포감이 소설을 쓰게 만든 원동력. “팬데믹 시기는 우리가 더불어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이 깨지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코로나 초기 이태원 집단감염 때 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타인이 나에게 질병을 전염시킬 수 있다는 것, 동선 공개 등 질병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공포를 느꼈어요. 막연히 생각해뒀던 주인공들의 삶이 떠올랐습니다. ‘이 시국에 얘네가 어떻게 살고 있을까’에 대해 쓰기로 했죠.”

부동산이나 가족 구성 등에 대한 작가의 박탈감은 소설 곳곳에 묻어난다. “서울에서 15년 정도 살고 있지만, 저는 아직도 세살이를 하고 있어요. 이미 결혼해 아파트를 산 친구들과 자산 규모가 10억~20억원씩 차이가 납니다.” “잡지사에 다니면서 새벽에 글을 쓰던 때, 아이와 함께 공원에 놀러 온 가족을 보며 박탈감을 느꼈죠. 내 또래의 사람들은 흔히 ‘보통’이라고 불리는 가족을 이루며 사는구나….”

지난 4월 부커상 쇼트리스트(최종심)에서 떨어진 뒤 책을 완성했다. 문예지에 발표했던 ‘요즘 애들’ ‘보름 이후의 사랑’ ‘우리가 되는 순간’에, ‘믿음에 대하여’를 새로 써서 더했다. “후보로 지목된 건 기쁜 일이었으나, ‘나는 안 될 거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욕심이 생겨 불안했어요. 오히려 떨어진 다음 자유로웠고, 더 집중해서 홀가분하게 잘 쓸 수 있었습니다.”

이번 책은 다음 시즌으로 넘어가는 ‘디딤돌’이다. “그동안 소설이 ‘작가의 일기장 같다’는 평을 많이 들었어요. 앞으로는 여러 사회 문제들, 저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을 다루고 싶어요. 이번엔 진지하게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추리, 스릴러 계열 소설도 좋아해서 구상 중입니다.” 그동안 자신이 그렸던 세계와는 좀 다른 책을 써서 “떨린다”는 박상영. 그가 독자들에게 말을 건다. “저 이렇게 글 써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