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파생 시리즈의 첫 한국인 촬영감독 정정훈씨. ‘올드보이’ 등 박찬욱 감독의 영화 7편, ‘커런트 워’ 등의 촬영감독을 맡으며 할리우드에 안착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처음 할리우드로 넘어왔을 땐 한국인이라고 하면 ‘남한이냐 북한이냐’ 먼저 물어 황당했죠. 조금 지나니 ‘강남 스타일’부터 얘기해 어이없었고요. 요즘은 여기 사람들이 먼저 한국 영화와 ‘오징어게임’, ‘내 딸이 BTS 콘서트에 가고 싶어 미칠 지경’이라는 말부터 꺼냅니다.”

디즈니+를 통해 공개 중인 스타워즈 드라마 ‘오비완 케노비’의 정정훈(52) 촬영감독은 14일 화상 인터뷰에서 “이제 한국 문화는 ‘이국적 볼거리’가 아니라 동등하며 보편적인 경쟁 선상에 있는 콘텐츠로 인정받는다. 할리우드에서 피부로 느끼는 변화”라고 했다.

우주를 배경으로 융합된 서부극과 중세 기사 이야기, 거대한 악에 맞서 세계를 구원하는 영웅들을 그리는 ‘스타워즈’ 시리즈는 ‘현대 미국의 새로운 건국신화’. 정 감독은 미국인들에게 일종의 종교적 숭배 대상인 이 시리즈의 촬영을 책임진 첫 ‘토종’ 한국인이다. “처음엔 ‘최초’라는 게 부담스러웠죠. 제작진도 대부분 열혈 팬이라 ‘스타워즈는 꼭 이래야 해’ 같은 암묵적 규칙이 있거든요. 저는 그런 규칙에 대한 강박 없이 자유롭게 찍을 수 있어 오히려 강점이 된 것 같아요.”

정 감독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에게 촬영 책임을 맡긴 제작사 디즈니와 루카스필름의 결정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는 박찬욱 감독과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등 영화 7편을 함께 찍은 ‘박찬욱의 오른팔’. ‘올드보이’의 ‘장도리 액션’이 그의 작품이다. 박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 ‘스토커’를 찍던 10년 전쯤부터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며 ‘퀸즈 갬빗’ 안야 테일러 조이가 주연한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스파이더맨’ 톰 홀랜드의 ‘언차티드’ 등 영화의 촬영감독을 맡았다.

그는 “박 감독님이 칸 감독상을 받은 ‘헤어질 결심’은 개인적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했지만 유튜브 생방송으로 시상식을 보며 축하 문자를 주고받았고, 통화도 자주 한다”며 “감독님 작품은 기회가 되면 무조건 하고 싶은데, 요즘 한국 촬영감독들이 훨씬 훌륭해서 저를 다시 쓰실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진심이에요. 요즘 한국 영화를 보면 ‘저걸 어떻게 찍었지?’ ‘내가 지금 가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며 놀랄 만큼 수준이 높습니다. 그는 “이제 할리우드에서 ‘한국에서 온 촬영감독’이 아니라 여기 다른 촬영감독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하고 있다”고도 했다.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부담도 크고 작품 선택이 더 신중해져요.”

‘오비완 케노비’는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어둠의 세력을 대표하는 ‘다스 베이더’의 스승. 정 감독은 스스로를 “조명이나 카메라 앵글보다 시나리오와 인물에 대해 감독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라고 했다. “이야기와 캐릭터에 대해 합의가 되면 비주얼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이번 드라마의 주인공 ‘오비완’은 전 우주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라 생각하고 찍었어요. 오비완을 연기한 이완 맥그리거는 카메라 안에서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는 ‘오비완’ 그 자체였어요. 늘 ‘짠’한 마음이 들 만큼.”

할리우드에 진출하고 싶은 한국 창작자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봉준호 감독님의 ‘1인치의 언어 장벽’ 얘기에 크게 공감하지만 스태프는 언어를 익혀 그 장벽을 아예 없앨 수 있다면 더 큰 기회의 문이 열립니다. 세상에 쉽게 얻어지는 건 없죠. 각오가 돼 있다면 얼마든지 도전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