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서울 중구 조선일보사에서 건축 다큐멘터리 '위대한 계약'을 연출한 김종신, 정다운 부부 감독이 본지와의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2. 4. 21 / 장련성 기자

같은 영화 연출부 생활, 같은 영국 유학, 같은 건축 전문 영상 회사 운영, 같은 다큐멘터리 공동 연출까지. 파주 출판 도시의 역사를 다룬 다큐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를 연출한 김종신·정다운(47)씨는 20여 년째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갑내기 부부 감독이다.

역설적으로 이들은 2001년 개봉한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연출부 막내들로 처음 만났다. 21일 다큐 개봉 당일 인터뷰에서 이들은 “결과적으로 영화 제목과 반대되는 삶을 살고 있는 셈”이라며 웃었다. 영화계 입문으로는 남편 김 감독이 2년 선배. 하지만 이들은 “둘 다 1975년 토끼띠라서 처음부터 편하게 지냈다”고 말했다. 2003년 영국 유학을 함께 떠나서 남편은 런던 골드스미스대에서 영화 연출, 아내 정 감독은 케임브리지대 건축대학원에서 건축과 영상을 전공했다. 틈틈이 남편은 스타벅스에서, 아내는 동네 서점과 비디오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를 벌었다.

귀국 후 이들이 처음 시작한 다큐 작업이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1937~2011)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 ‘이타미 준의 바다’였다. 이타미 준은 제주도에도 수·풍·석(水·風·石) 박물관, 방주교회 같은 건축물을 남겼다. 제주도가 고향인 남편 김 감독은 “공간이 주는 따뜻한 감동을 영상으로도 전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들었다”고 말했다. 2019년 개봉 후 전주국제영화제 CGV 배급지원상을 받았다.

2012년 이들 부부는 건축 전문 영상 제작사인 ‘기린그림’을 함께 차렸다. 회사 이름은 기타리스트 이병우의 음반 제목에서 따왔다. 이들은 부부 감독이 함께 일할 때의 장단점에 대해 “월급을 줄 필요도 없지만, 퇴근도 없다는 점”이라며 웃었다. ‘바그다드 카페’와 ‘베를린 천사의 시’,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작품까지 부부는 ‘영화 취향’도 닮았다.

전작 ‘이타미 준의 바다’가 한·일의 건축물을 찾아다니는 공간적 답사라면, 이번 ‘위대한 계약’은 파주 출판도시의 30년 역사를 ‘시간 여행’하는 듯한 묘미가 있다. 이들 부부는 “출판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서 출판인과 건축가들이 서로 양보하고, 갈대밭이 있는 샛강을 지켜내서 생태적으로도 살아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이야말로 이 도시의 독특한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다큐는 책과 사람뿐 아니라 샛강과 갈대, 철새까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도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건축은 가만히 멈춰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계절과 날씨에 따라서 시시각각으로 변한다”면서 “건축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을 찾기 위해 현장에서 기다리는 일이 다큐 작업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올림픽공원, 선유도 공원 등을 맡았던 ‘한국 조경(造景)의 선구자’ 정영선 조경설계 서안 대표에 대한 다큐를 만드는 것이 다음 목표다. 이들 부부는 “아직까지 건축을 부동산적 투자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은 도서관·미술관·박물관·공원까지 향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건축의 공공성을 일깨우는 작품들을 계속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