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블링크(블랙핑크 팬클럽명), 제니예요.”

최근 동영상 소셜미디어 틱톡에는 걸그룹 블랙핑크의 캐릭터 스티커를 전자펜으로 누르는 영상이 올라왔다. 한 명 한 명을 누를 때마다 각 멤버가 직접 한국어로 녹음한 목소리가 들렸다. 방탄소년단 소속사의 자회사 ‘하이브 에듀’가 YG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지난달 출시한 ‘블랙핑크 인 유어 코리안’ 한글 교재 사용기 영상이었다. 3일 현재 이 영상의 조회수는 32만7000회, 댓글은 4000개가 넘었다.

①한글교재‘블랙핑크 인 유어 코리안’속 모델로 쓰인 걸그룹 블랙핑크의 사진(왼쪽부터 지수, 제니, 리사, 로제). ②이들을 본뜬 교재 속 캐릭터. 이 캐릭터들을 누르면 실제 목소리로 한글 대사를 한다. ③트위터에서는 BTS 팬클럽 활동에 쓰이는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해 올리는 계정이 인기다.

K팝이 전 세계에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최근 소셜미디어에선 블랙핑크·BTS 등 K팝 스타가 모델이 된 한글 교재 세트를 구매해 포장을 뜯는 해외 팬들의 언박싱(unboxing) 후기가 인기다. 이들은 마치 앨범 굿즈처럼 한글 교재를 사모은다.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로 한글 발음을 듣고 배우며, 좋아하는 멤버의 사진 카드도 모을 수 있어서 인기다.

하이브 에듀는 이런 구성으로 재작년 BTS 한글 교재 ‘런 코리안 위드 BTS’를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 30여 국가에서 30만부 이상 판매했다.

SM엔터테인먼트도 지난달 29일 MBC, 스타트업 코이랩스와 함께 아이돌을 내세운 교육 콘텐츠 개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전 세계 K팝 팬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한글 교육 콘텐츠를 골라 배울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이브, YG, SM 등 K팝 소속사들은 왜 특별히 한글 교육 콘텐츠 개발에 열을 올리는 걸까. 원인은 K팝 팬덤의 한글 수요 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과거에는 일부 팬이 한국어학당을 찾거나 한글로 된 굿즈를 사는 게 한글 소비의 일반적 형태였다. 하지만 최근 K팝 팬덤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방송뿐 아니라 소셜미디어로 실시간 공유되는 이들의 일거수일투족 속 한글까지 전부 배우고 싶어한다.

트위터에서 한 계정당 최소 30만~40만 팔로어가 거뜬히 넘어가는 ‘BTS 번역계’가 대표적 예다. 이들은 ‘소복소복’ ‘개돼지’ ‘황새와 뱁새’ 등 BTS 노래 속 단어는 물론 ‘최애(최고 애정한다는 뜻)’ ‘부캐(부캐릭터)’ ‘덕질’ 등 팬클럽 활동을 위한 한글 은어까지 각국 언어로 번역한다. 오빠(Oppa), 언니(Unnie) 등 자주 쓰이는 팬 용어는 아예 한국어 발음대로 영어 철자를 적으며 일명 ‘돌민정음(아이돌+훈민정음)’ 리스트로 공유한다.

BTS 관계사 하이브에듀는 이런 수요를 적극 겨냥하고 있다. 특히 바쁜 일정의 BTS가 교재용 오디오 녹음에 참여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자 인공지능(AI)에게 BTS 음원 음성을 심층학습(딥 러닝)시켜 활용하는 기술까지 확보했다. 지난 30일 하이브에듀는 네이버 영어 교육 플랫폼 계열사 ‘케이크’와 글로벌 한글 교육 투자 확대를 위한 합병을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9일 한글날에는 한글 교육용 가요 ‘가나다(GANADA)’를 발매했다. ‘가’부터 ‘하’까지 14개 음절을 후렴구로 활용해 외국인이 한글 상용어를 쉽게 따라 부르게 한 음원으로, 수익 일부는 다시 한글 교육 개발에 쓴다. BTS 목소리가 직접 들어가진 않았지만, 전형적인 K팝 스타일 작곡에 K팝 댄서로 유명한 아이키의 안무를 붙여 뮤직비디오를 선보였다. 여기에 BTS 리더 RM이 과거 ‘한글’을 주제로 지었던 자작시 ‘’ㄱ’한다’를 낭송한 영상을 함께 홍보 영상으로 썼다.

교육부도 지난해부터 하이브에듀와 함께 해외 보급용 한글 범용 교재에 BTS를 등장시키려고 준비하고 있다. 연내 완성을 목표로 해외에서 한국어를 채택하고 있는 전 세계 39국, 1669개교에 보급하는 게 목표다. 초·중교의 경우 현재 수강생 수는 약 16만 명으로 추산된다. 영국 셰필드대, 미국 미들베리대, 프랑스 에덱비즈니스스쿨 등 7개국 9개 대학에서 하이브에듀의 BTS 한글 교재를 정식 교재로 채택해 좋은 반응을 얻은 선례를 적극 고려한 사업이다.

K팝 팬덤이 가수의 한글 어록뿐 아니라 자주 쓰는 한글 말투, 단어 습관까지 분석해 밈(Meme·인터넷 유행 문화)처럼 소비하는 것도 소속사들의 한글 교육 사업을 더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좋아하는 가수 목소리가 담긴 한글 교재는 K팝 팬들에게 일종의 굿즈 확장판”이라며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등장하는 한글을 골라 사려는 욕구는 전 세계 한글 교육 시장을 세분화하면서 점점 더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