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왕' 메인 포스터 ⓒ 뉴스1

‘K좀비’ 신화의 시작점이었던 천만 영화 ‘부산행’(2016)의 흥행과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2021) 이전, 연상호 감독은 독립 애니메이션의 작가적 감독으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군대내 폭력을 다룬 ‘창’(2012)과 사이비 종교를 다룬 ‘사이비’(2013) 등의 작품에서 연상호 감독은 억압적 시스템이나 거대한 힘 아래 왜곡되는 사람 사이의 관계, 짓눌린 개인을 뚝심있게, 깊숙이 들여다보곤 했다. 학교 폭력을 다룬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 역시 아이들의 학교에서부터 시작되는 계급적 분리, 어른이 돼서도 치유되지 않는 피해자의 상처 등을 연상호 만의 날선 감각으로 다뤄 충격을 던졌다.

11년이 흘러 ‘돼지의 왕’이 토종 OTT 티빙의 12부작 오리지널 드라마로 돌아왔다. 학교 속 아이들 중심이었던 원작 애니메이션과 달리, 드라마는 어린 시절 상처를 품은 채 커버린 어른들이 벌이는 피의 복수와 연쇄살인을 다루는 스릴러의 모양새를 띤다. 지난 주말 4화까지 공개됐고, 이번주 5~6화가 공개된다.

원작자 연상호 감독과 이번 드라마의 탁재영 작가가 29일 온라인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작품에 관해 말했다.

◇”11년이 지났어도 변하지 않은 현실”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돼지의 왕'의 원작자 연상호 감독(왼쪽)과 드라마 작가 탁재영. /티빙

연상호 감독은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을 만든 뒤 ‘그 시절 가해자들은 어떻게 살까요’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 드라마는 하나의 대답”이라고 했다. 현실은 변화했을까. 연 감독은 “11년 전 ‘돼지의 왕’의 디스토피아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오히려 점점 더 복잡해지고 고도화되고 있다”고 했다. “그 때 질문엔 ‘아마 우리 사회에서 평범하게 잘 살고 있지 않을까요’라고 답하곤 했어요. 단편 애니메이션 만들던 시절부터 잘 알고 지내던 탁재영 작가에게 ‘드라마로 써보자’고 얘기하면서, 현재의 가해자를 향한 그 시절 피해자의 복수극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고 얘기했죠.” 탁재영 작가는 “아직 극 초반이지만 ‘웰 메이드’라는 호평이 많아 보여 다행”이라며 웃었다. “원작을 아는 관객이 배신감을 느끼지 않도록, 원작의 날 것 그대로의 정서와 감각,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어요. 12부작 드라마로 옮겼을 때 몰입감과 극적 재미도 놓치지 않기 위해 스릴러 장르의 구조를 도입했고요.” 원작은 성인이 과거를 회상하는 구조지만, 드라마는 원작의 끔찍한 사건을 겪은 아이들이 성인이 돼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이야기를 하나 하나 들여다본다. “과거의 상처들이 현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깊이 있게 다뤄보자고 마음먹었죠.”(탁재영)

◇”피해자는 지옥인데 가해자는 추억으로 간직한다”

'부산행' '지옥' 연상호 감독의 동명 애니메이션이 원작인 OTT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돼지의 왕'. /티빙

청불 드라마답게 폭력의 수위가 매우 높다. 탁재영 작가는 “어른들의 복수가 납득되려면 꾸미지 않고 솔직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존 방송 틀에선 어려웠지만 OTT 플랫폼으로 넘어 오면서 더 사건을 리얼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죠. 어른들을 위한 스릴러니까요.” 연상호 감독은 “독립 애니메이션 원작이 가진 날 것의 느낌을 어떻게 낼까 하는 고민이 좀 더 센 표현 수위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학교 폭력은 예민한 문제다. 드라마엔 ‘피해자는 지옥인데 가해자는 추억으로 간직한다’는 대사가 등장한다. 폭력의 트라우마는 깊은데 가해자의 기억은 자기 편한 대로 왜곡되기도 한다. 학폭 가해자는 정말 장난이라 생각할까. 탁재영 작가는 “가해자에게 ‘당신들의 장난이 끔찍한 트라우마를 남겼다’고, ‘피해자들은 끝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고 했다.

◇”피해·가해 이분법, 복수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부산행' '지옥' 연상호 감독의 동명 애니메이션이 원작인 OTT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돼지의 왕'. /티빙

주인공의 사적 복수 과정에는 주변의 도움이 큰 역할을 한다. 어떻게 그 많은 ‘내 편’을 만들었을까. 연상호 감독은 “황경민의 분노가 혼자의 분노가 아니라 ‘공분(公憤)’이기 때문이었기에 조력자를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했다. 탁 작가도 동의했다. “영화나 드라마는 현실에 있을 수 없는 판타지를 다루기도 하죠. 현실에서 느끼는 울분에 대해, 드라마의 카타르시스가 대리 만족을 주는 측면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돼지의 왕’은 그 대리 만족 만을 위한 드라마가 아닙니다.” 탁재영 작가는 “오히려 그게 정당한가, 피해와 가해의 이분법은 가능한가 묻고, 깊이 있게 다루려 했다”고 말했다.

드라마 초반부는 복수에 집중하지만, 두 사람은 “후반부로 갈수록 폭력이 가진 복합적 성격을 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피해자가 똑 같은 방식으로 복수하는 게 정당한 걸까 주인공도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겁니다. 시청자도 폭력적 복수에서 말초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하게 되길 바랬습니다.”

◇”학교 폭력 없는 나라는 없겠지만…”

'부산행' '지옥' 연상호 감독의 동명 애니메이션이 원작인 OTT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돼지의 왕'. /티빙

학창 시절의 학교는 아이가 처음 대하는 세상이다. 탁재영 작가는 “학교 폭력을 국외자인 것 처럼 바라보는 친구들과 같은 반 학생들, 떨어져 있는 듯 하지만 깊이 연루돼 있는 교사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연상호 감독은 “학교 폭력이 없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새벽에 학교 가서 밤에 돌아오잖아요. 그학교 외의 세상이 없어요. 그러니 학교 내 폭력이 마주한 세상 전체의 폭력이 돼 버립니다. 성인이 되서도 크게 다르지 않죠.” 연 감독은 “한 인간이 속한 커뮤니티가 여럿 있다면 상호 보완과 해소가 가능할 것”이라고도 했다. “저부터 작품을 만들 때 ‘어떤 성과가 나올까’를 먼저 생각해요. 그런 성과주의에서 벗어나서 개인적으로 즐거운 작품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태도가 지금 사회를 변화시키는 작은 실천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