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예술가 JR이 우크라이나 소녀 발레리아의 사진을 45m 대형 천에 프린트해 리비우에서 시민들과 함께 펼친 퍼포먼스. /예술가 JR 인스타그램(@jr)

다섯 살 우크라이나 소녀의 환한 미소가 광장을 뒤덮었다. 프랑스 설치예술가이자 사진가인 JR(39)이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인들을 돕기 위해 지난 14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오페라하우스 앞 광장에서 벌인 퍼포먼스였다. JR은 프랑스의 누벨 바그 거장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에 출연해 대중에게도 익숙한 예술가다. 인스타그램에 수백만 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영화‘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 출연한 프랑스 예술가 JR(왼쪽).

파리에 사는 그는 소셜미디어와 뉴스로 전쟁 소식을 접하다가 현지에서 직접 연대의 목소리를 내기로 마음먹는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지인 사진가에게 국경 지대로 피란 온 아이들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중 다섯 살 소녀 발레리아의 티 없이 맑은 미소가 눈에 띄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고향인 크리비리흐에서 온 발레리아는 아빠, 오빠와 생이별하고 엄마와 집을 떠났다.

예술가 jr이 NFT로 만든 우크라이나 퍼포먼스 영상 '‘valeriia unfurling’

JR은 소녀의 사진을 45m 대형 천에 프린트한 다음 돌돌 말아 차에 싣고 국경을 넘어 지난 14일 리비우에 도착했다. 현지 예술가들의 도움을 받아 리비우 오페라하우스 앞 광장에서 즉석으로 시민 100여 명과 함께 대형 천을 펼쳐보이고 거리를 행진했다. ‘게릴라 퍼포먼스’엔 부모 손을 잡고 나온 아이부터 군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발레리아의 환한 미소가 잠시나마 총성을 잊게 했다. 이날 행사를 드론으로 찍은 사진이 ‘우크라이나의 회복력(Resilience of Ukraine)’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최신호(3월 28일 발행) 커버를 장식했다.

JR이 펼친 퍼포먼스 사진이 커버로 실린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최신호.

JR은 인스타그램에 퍼포먼스 과정을 영상으로 올리면서 “말 그대로 차를 몰고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일어난 전쟁은 처음”이라며 “이 어린 소녀는 미래이며 이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상기하게 한다”고 말했다. 지난 22일엔 “분쟁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국경의 긴 줄이 피란 온 여성과 어린이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깨달았다”며 이들을 돕기 위해 퍼포먼스 영상과 사진을 NFT(대체불가능토큰)로 발행했다.

오는 28일까지 홈페이지를 통해 판매하며 수익금은 전액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 난민을 지원하는 데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JR은 참여를 호소하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예술이 전쟁을 바꿀 수 있을까(Can art change the w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