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가 1월의 소설을 추천합니다. 이달 독회의 추천작은 2권. ‘0%를 향하여’(서이제), ‘완벽한 생애’(조해진)입니다. 심사평 전문은 chosun.com에 싣습니다.

‘知的 부랑자’ 재발견, 새로운 재능 환영한다

[1] 서이제 소설집 ‘0%를 향하여’

‘0%를 향하여’(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된 소설들은 2010년대 이래 한국 소설의 중요한 경향 중 하나로 자리 잡았던 ‘루저 인생들’의 문제를 바로 ‘지적(知的) 부랑자들’의 문제로 집약시킴으로써 한국 소설의 단계를 훌쩍 격상시킨다. 사회적 고난 위에 현실 모순에 대한 성찰을 덧쌓고, 다시 그 위에 그 모순을 돌파할 수 있는 독자적 삶의 형식을 고안하는 시도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버려진 자들은 자유인으로 재탄생하기 위한 몸부림을 필사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인물이 “현장에 가면 돈은 벌 수 있었지만 글을 쓸 수 없었고, 글을 쓰지 못하면 내 작품을 만들 수 없었다. 내 작품을 만들지 못하면 감독이 될 수 없었다”고 진술하듯 말이다.

이런 절박한 몸부림이 피워올린 생존목(生存木)의 우듬지에서 독자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데, 그것은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그 문제 자체를 해결의 실마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자신이 먼저 변화해야 하고, 자신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마음과 몸이 동시에 변화해야 한다는 간단하고도 무궁무진한 이치의 첫 단추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이제

변신 의지를 실감나게 느끼게 해주는 건 아주 솔직하고도 단순명쾌한 묘사들이다. 인물들의 생김새, 그들의 생각, 대화 등 모든 것이 마치 길거리나 카페에서 직접 듣는 듯한 착각이 날 정도로 현대인의 일상을 투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결국은 돈 얘기로 끝나고 마는 현대인들의 이야기 스테레오타입에서부터, 너무나도 사소한 계기로 점화된 예술적 충동에 이르기까지 화자의 속살을 비춘다. 마치 움직이는 근육과 뼈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살다 보면 이런 투명성과 단순성에 깊이 매료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런 단순함이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반듯한 세계에 대한 전망을 최대화하는 듯이 독자의 마음을 해방시킨다. 새로운 재능의 출현을 기꺼이 반길 까닭이 차고 넘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서이제

- 2018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젊은작가상(2021), 오늘의작가상(2021) 등

표류 인생에 주목, 진지해서 더 미더워

[2] 조해진 장편 ‘완벽한 생애’

‘완벽한 생애’(창비)는 세 인물의 이야기를 시점을 바꿔가며 들려주는데, 그들 가운데 누구의 삶도 완벽하지 않다. 각자에게 사연이 있지만, 과거 속에서 현재를 살고, 정착하지 못해 떠돌고,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확신 없이 일한다는 점에서 셋은 같다. 부모나 자식, 그리고 연인에 대한 과거의, 대체로 부정적인, 이를테면 이별이나 상실 같은 기억들이 이들로 하여금 현실의 삶에 충실하지 못하게 한다. 평범함을 유지하기 위해 발을 동동거리며 뛰어다니는 삶이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신념은 내부의 의심에 의해 부서진다. 이들은 표류하는 배처럼 떠돈다. 서울과 제주도와 홍콩을 오가는 이들의 배에는 닻이 없다. “그래요, 나는 도망치려고 하는 것입니다.”라고 이 소설의 인물인 윤주는 말한다. 헤어진 연인과의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며 영등포에 온 홍콩 남자 시징은 포구를 찾지 못한다. 영등포가 포구라는 것은 과거에 속한 일이 아닌가. 이들의 정박에 대한 꿈은 미뤄지고 희미해지고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도망치는 건 무섭지 않은데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또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요?” 이들의 어떤 생을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작가는 왜 이 소설에 ‘완벽한 생애’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조해진

각기 자기의 삶을 사는 세 인물을 연결하는 것은 그들의 ‘방’이다. 시징은 윤주의 영등포 방을 얻어 들고, 제주로 떠난 윤주는 미정으로부터 빈방을 얻는다. 시징의 옛 연인 은철은 시징의 방에 들어와 한동안 지냈다. 이 거주는 임시적이지만, 임시적 거주를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이것은 불안정하지 않다. 자신에게 속한 공간을 타인에게 제공하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나눠주는 행위와 같다. 우리의 삶은 완벽할 수 없지만 타인의 일부를 나눠 씀으로써 이 임시적 거주를 완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저 제목 속에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받아들일 때 여기서 저기로 떠나는 것은 도망이 아니라 이동이 되고, 정박은 이뤄야 하는 목표가 아니라 서로에게 서로를 내주기 위한 수단이 된다. 자기 자리를 갖지 못한 이들에 대한 조해진의 윤리적 관심은 한결같고, 그 문학적 태도는 여전히 진지해서 미덥다.

☞조해진

―신동엽문학상(2013), 이효석문학상(2016), 대산문학상(2019) 등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2008) ‘빛의 호위’(2017), 장편 ‘로기완을 만났다’ (2011) ‘단순한 진심’(2019) 등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정과리·구효서·이승우·김인숙·김동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