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쉿!

끼리끼리 마을 소곤소곤 단지에 사는 사람이라면 아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소리일 거야. 소곤소곤 단지에는 매우 엄격한 규칙이 있거든. 첫째, 저녁 8시 이후로는 악기 연주와 세탁 금지. 둘째, 휴대전화 벨 소리는 진동으로 맞추어 놓기. 셋째, 대화할 땐 소곤소곤.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절대 금물이지.

그런 우리 단지에 이상한 일이 생겼어.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운전하던 엄마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어. 밖을 바라보니 까만 스프레이 칠이 된 표지판이 지나가지 뭐야.

요즘 끼리끼리 마을에서 우리 소곤소곤 단지에만 일어나는 일이었지. 일주일 전부터 까만 스프레이가 나타난 뒤로 ‘올해의 다툼 없는 마을 상’을 받았다는 현수막에도, 옆집 아저씨네 세탁소 간판에도 ‘끼리끼리’란 글자만 보였다 하면 스프레이로 뒤덮였어. 거리마다 까만 칠투성이가 된 거야.

“쳇, 집값 떨어지게…….”

못마땅해하는 건 엄마뿐만이 아니었어. 늘 조용했던 소곤소곤 단지에 감도는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어른들은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었지. CCTV를 사려고 모여든 사람들만 봐도 알 수 있는걸.

“잡히기만 해봐라.”

학교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물걸레로 교문 현판을 닦고 있는 교감 선생님이 보였어. 교감 선생님은 우리의 인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끼리끼리 초등학교’란 글자를 뒤덮은 까만 스프레이를 지우는 데에 열중했어. 학교까지 습격당했다는 소식에 교실마다 온통 범인 이야기로 술렁였지.

“누리야. 너도 봤어? 누구 짓일까?”

“글쎄.”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창밖의 교문을 바라봤어. 교문 앞에는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교감 선생님이 보였어. 고작 스프레이에 이 난리라니. 허둥지둥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어쩐지 우스꽝스러웠어.

야옹-. 책장을 넘기던 손이 멈칫했어.

“해피?”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어. 또 잘못 들었나 봐. 나는 다시 책을 들여다봤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글자를 몇 번이고 반복해 읽어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없었어. 요동친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거든. 시계 초침이 척, 척,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어. 그 소리가 마치 해피를 잃어버린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았어.

‘해피야…….’

나는 간절히 이름을 불러보았어.

해피는 내 동생이야. 그리고 나의 오랜 친구이기도 해. 학교에서 외롭게 지낼 때 해피가 나의 유일한 친구였어.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지. 해피의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고 있으면 아무리 괴로운 일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어. 그랬는데…… 해피는 지금 내 곁에 없고 나는 해피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라.

‘소곤소곤’이란 단어를 떠올리자 샤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어. 나는 무심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뻗었어. 손끝에는 차가운 스프레이가 닿았어.

다음 날 아침을 먹을 때, 아빠의 말이 내 귀를 쫑긋하게 했어.

“어제 마을 긴급회의에 쩌렁쩌렁 단지 사람들도 왔다며?”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어제 상황을 말해줬어.

“말도 마. 어찌나 시끄러운지. 그쪽 사람들 말할 때마다 머리가 아프더라고.”

“참 나, 하나같이 교양을 모른다니까. 그래서 회의는 잘됐어?”

“아니. 사건 날에 뭐 했는지 알려 달라니까 의심한다며 화만 잔뜩 냈어.”

“역시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야. 끼리끼리 마을이 ‘올해의 다툼 없는 마을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우리 소곤소곤 단지 덕분이잖아.”

“그러니까. 항상 시끄러운 주제에 되레 적반하장으로 나오지 뭐야? 그쪽 사람이 범인일 게 뻔한데.”

원래도 물과 기름 같던 소곤소곤 단지와 쩌렁쩌렁 단지가 이번 일로 사이가 나빠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어. 소곤소곤 단지 사람들은 범인이 쩌렁쩌렁 단지 사람이라고 확신했어. 하지만 나는 알고 있어. 쩌렁쩌렁 단지 사람들은 잘못이 없다는 걸.

“해피야, 여기 있니?”

조심스럽게 들여다본 자동차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오늘도 허탕인 거야. 날이 갈수록 해피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어. 자꾸만 그날 밤 일도 떠올랐지. ‘끼리끼리’란 글자만 보면 스프레이를 꺼내 들게 하는 그날 밤 일 말이야.

치이이이익-

스프레이가 보기도 싫은 ‘끼리끼리’란 글자를 새까맣게 뒤덮었어. 컴컴해진 그 모습이 마치 내 심정 같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어떤 손이 뒷덜미를 확 잡아챘어.

“요놈, 딱 걸렸다!”

나는 도망치려고 발버둥 쳐봤어. 하지만 어른의 힘에 맞서기에는 무리였나 봐. 결국 저항을 멈추고 경비 아저씨에게 순순히 붙잡혔어. 사실 이렇게 되길 바랐는지도 몰라.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어. 그중에는 엄마와 아빠도 있었지. 엄마 아빠는 내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어.

“……누리야, 대체 왜 그런 거니?”

역시 이럴 줄 알았어. 엄마 아빠는 그날 일을 잊은 게 틀림없었어. 그때도 지금도 결국 나 혼자만 애가 탔던 거야.

나는 주먹을 꾹 쥔 채로 말했어.

“이게 다 소곤소곤 단지 때문이야.”

“무슨 말이야?”

“해피가 사라졌을 때도 이름을 크게 부르지 못하게 했잖아.”

“그렇다고 한밤중에 큰 소리를 낼 수는 없잖니……. 그건 규칙 위반이야.”

엄마는 그날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했어.

“엄마 아빠는 내가 사라져도 아침이 될 때까지 조용할 거야, 그렇지?”

어느새 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어. 나는 대답하지 못하는 엄마 아빠 때문에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어.

“거참, 듣고 있으니까 정말 너무들 합니다.”

쩌렁쩌렁 단지에서 온 덩치 큰 아저씨가 내 곁에 서며 말했어.

“얘야, 우리 쩌렁쩌렁 단지에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많아서 얼마나 애가 탔을지 잘 알고 있다. 해피는 아직도 못 찾은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자 아저씨가 내 어깨를 툭툭 다독여 주었어.

“그렇지만 네가 벌인 일들은 잘못된 거야. 알고 있니?”

얼굴이 화끈거렸어. 나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닌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는걸. 그동안 애써 모른 척했던 죄책감이 한꺼번에 되돌아오는 기분이었어.

“죄송해요, 모두…….”

“그래. 어찌 됐든 잘못인 걸 알면 됐다.”

엄마 아빠는 여전히 한숨을 쉬었어. 내 마음도 여전히 답답했어. 소동을 벌이기 전과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거든.

‘해피야, 미안해.’

그때, 쩌렁쩌렁 단지의 누군가가 외쳤어.

“좋은 방법이 있어! 혹시 해피가 쓰던 장난감이나 담요 같은 게 있니?”

고개를 끄덕였더니, 그 사람은 껄껄 웃고는 금방 오겠다며 어딘가로 사라졌어. 밤이 되자, 쩌렁쩌렁 단지 사람들이 개 몇 마리를 끌고 나타났어.

“아우, 시끄러워! 한밤중에 이게 무슨 소란이에요.”

“좀만 기다려 봐요. 이 녀석 중에는 경찰견 출신도 있다고요. 해피의 냄새를 맡으면 어디에 있는지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

나는 해피의 물건들을 넘겨주었어. 그중 한 마리가 바닥에 코를 박고 킁킁대더니 곧장 앞으로 달려 나갔어.

“냄새를 맡았나 봐!”

쩌렁쩌렁 단지 사람들은 신이 나 앞장서 뛰었어. 소곤소곤 단지 사람들도 호기심에 못 이겨 따라나섰지.

“해피야, 언니 여기 있어!”

개들이 도착한 곳은 끼리끼리 마을 뒷산이었어. 나는 산속에 들어서자마자 해피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쳤어. 소곤소곤 단지 사람들도 해피의 이름을 조용히 부르며 함께 찾아 주었어.

멍! 멍!

얼마 지나지 않아 제일 앞서가던 개가 나무 한 그루를 향해 짖었어. 손전등으로 비춰보자 나무 밑 토굴 안에서 잔뜩 겁을 먹은 해피가 보이지 뭐야!

“해피야!”

나는 달려가 해피를 끌어안았어. 해피는 개들을 경계하며 한껏 귀를 눕혔지만, 도망가지 않고 얌전히 내 품에 있었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차갑고 꼬질꼬질한 털이 그간의 고생을 말해주는 듯했어. 나는 해피가 내 곁에 돌아왔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어.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목청껏 울었어.

으아아앙-!

소리가 멀리 뻗어 나갔어. 곤히 잠든 누군가를 깨울 만큼 큰 소리였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쓰고 싶지 않았어.

“저기, 너무 시끄러운데…….”

누군가 지적하자 쉬잇, 어른들이 동시에 검지를 들어 올렸어. 그리고 우는 나를 가만히 기다려주었어.

잠시 후 누군가 작게 중얼거렸어.

“사실 생일 파티만큼은 떠들썩하게 지내고 싶었어. 그런데 가족들이 이웃들 눈치를 보느라 축하 노래도 제대로 불러주지 않았지.”

다른 누군가도 고개를 끄덕였어.

“우리 단지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힘들어하는 것도 문제예요. 너무 조용한 환경에서만 자라 온 탓에 작은 소음에도 집중을 잘 하지 못하게 됐죠.”

“나도 스포츠 경기를 볼 때만큼은 큰 소리로 응원하고 싶어.”

여기저기에서 불만이 쏟아져 나왔어. 그러자 쩌렁쩌렁 단지 사람들도 말했어.

“사실 우리 단지도 문제가 많아. 어떤 집은 새벽에 세탁기를 돌리질 않나, 밤새 피아노를 쳐대기도 한다고. 난 이제 불면증이 생겨버렸어. 소곤소곤 단지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

“맞아. 지난번엔 소음 때문에 화재경보 소리가 묻혀 큰일 날 뻔했잖아.”

“어느 쪽이든 문제는 있구나.”

“그러게.”

양쪽 사람들은 말이 없어졌어. 갑자기 찾아온 정적이 며칠간 이어졌던 소동이 완전히 끝났음을 알려주는 듯했어.

‘올해의 다툼 없는 마을 상’ 현수막이 내려가자 사람들은 탄식을 내뱉었어.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들 일상으로 돌아갔어. 이제 끼리끼리 마을은 더는 다툼 없는 마을이 아니야.

“여기 있던 내 귀마개 못 봤어?”

“또 아랫집이야? 민원을 넣든가 해야지.”

“예전 소곤소곤 단지였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인데. 그 시절이 그리워…….”

쩌렁쩌렁 단지와 소곤소곤 단지 사람들이 섞여 살기 시작한 뒤로 여기저기에서 사소한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했거든. 여전히 누군가는 조용했고, 여전히 누군가는 시끄러웠어. 그런데도 마을 사람들은 한데 모여 살았어.

“안녕하세요. 장 보고 오셨어요?”

“네, 마침 할인 행사를 하더라고요. 혹시 과일 좋아하세요? 귤을 너무 많이 사서 좀 드리고 싶은데.”

서로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도 해. 조용하기만 했던 우리 단지도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오는 동네가 된 거야.

나는 이제 우리 마을이 마음에 들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