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1층엔 지금 동백꽃이 한창이다. 12월 중순인데 무슨 꽃이냐 할 사람도 있겠지만 동백꽃은 빠르면 11월부터 피기 시작해 이듬해 5월까지 피는, 명실상부한 겨울꽃이다. 이 빌딩은 2011년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면서 1층 로비에 실내정원을 조성했다. 동백나무 외에도 애기동백나무, 담팔수, 돈나무, 다정큼나무 등을 볼 수 있어서 마치 제주도나 남해안에 온 것 같았다.
교보빌딩 동백꽃도 아름답지만 역시 동백꽃은 생육 조건이 맞는 제주도나 남해안에서 보는 것이 제맛이다. 윤대녕의 중편 ‘천지간(天地間)’은 이 남녘 동백꽃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1996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주인공은 문상 가는 길에 광주(光州)터미널에서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여자를 보고 뒤따라간다. 버스를 타고 다시 폭설이 내리는 길을 세 시간 넘게 걸어 이른 곳이 전남 완도 구계등(九階嶝)이었다. 파도에 밀려 자갈밭이 아홉 계단을 이룬다고 구계등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다. 해안선을 병풍처럼 둘러싼 상록수 방풍림에 동백나무들이 있었다. 소설은 구계등과 인근 여관을 겸한 횟집을 배경으로, 삶을 버리려는 여자와 이를 막으려는 남자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구계등 동백꽃은 막 꽃봉오리가 맺힌 상태에서 마침내 개화하기까지 이 소설 전개와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 초반부 남녀가 해변에서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서로를 탐색할 때 동백꽃이 나오고 있다.
<여자가 내게로 고개를 비트는 것 같아 나는 푹 숨을 내쉬며 대각선 방향으로 그녀를 비껴 동백을 찾아볼 양으로 숲으로 들어갔다. 동백은 무수한 꽃봉오리를 매단 채 한참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중이었다. 양달쪽으로 가지를 뻗는 것들은 아닌 게 아니라 하루 이틀 사이에 봉오리 끝이 빨갛게 터질 것 같았다.>
혹시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나 한밤중에 숲속에서 여자를 찾는 장면에서는 동백꽃이 긴박감을 더하고 있다.
<사위는 아직 어두웠다. 네발짐승처럼 민첩하게 돌밭을 가로질러 숲으로 들어가는 사내의 뒤를 나는 미처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사내가 정신없이 휘두르고 있는 전짓불 속에서 검자줏빛의 동백꽃 무리가 꿈속에서처럼 언뜻언뜻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마지막 부분도 동백꽃으로 맺고 있다. 여자가 새로운 삶을 찾아 먼저 떠난 아침, 주인공은 횟집 주인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동백이 피었나 한 바퀴 돌아보고 가시죠. 오늘쯤엔 봉오리가 터졌을 텐데요.”
“그냥 가겠습니다. 어쩌면 본 것도 같으니 말입니다.” 아리송한 얼굴로 사내가 나를 쳐다보았다.>
동백나무는 꽃잎이 벌어질 듯 말듯 살짝 벌어진 것과 활짝 벌어진 것이 있는데 각각 동백나무와 애기동백나무다. 동백나무는 우리나라 자생식물이지만, 애기동백나무는 일본 원산으로 도입한 재배식물이다. 애기동백나무는 일년생 가지와 잎 뒷면의 맥, 씨방에 털이 있는 것도 다르다. 제주도든 남해안이든 우리 자생종 동백나무보다 애기동백나무를 더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사람 손길이 닿은 곳은 그렇다.
동백꽃은 지는 방식이 독특하다. 꽃잎이 한두 장씩 떨어지지 않고 꽃 전체가 통째로, 싱싱한 채로, 심지어 노란 꽃술까지 함께 툭 떨어져 버린다. 그래서 꽃이 진 후에도 지저분해지지 않는다. 능소화·무궁화도 통째로 떨어지는 꽃이다. 붉은색에다 통째로 떨어지는 점 때문에 동백꽃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배신당하는 여인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로 시작하는 이미자의 노래 ‘동백아가씨’가 대표적이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도 이루지못한 사랑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선 이 오페라를 한동안 ‘춘희’로 번역했다. 이 오페라는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동백꽃 여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일본이 이 소설을 번역하면서 ‘동백아가씨’ 정도를 뜻하는 ‘춘희(椿姬)’로 번역했는데, 우리가 한때 그대로 받아들여 쓴 것이다.
동백나무의 영어 이름은 카멜리아인데 동백나무(Camellia japonica)의 속(屬)명이다. ‘Camellia’는 17세기 필리핀에 머물며 동아시아 식물을 연구한 체코 출신의 선교사 카멜(Kamel)의 이름을 딴 것이다.
동백나무가 한겨울에 꽃을 피우는 것은 곤충이 아닌 동박새가 꽃가루받이를 돕기 때문이다. 동박새는 동백꽃의 꿀을 먹는 과정에서 이마에 꽃가루를 묻혀 다른 꽃으로 나른다. 동박새는 워낙 작고 날쌔 실물을 보기가 참 힘든 새다. 동백꽃을 보러 갈 때마다 동박새를 담아보려고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분명 동백나무 사이에서 새소리가 나는데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교보빌딩 동백꽃은 아무리 꽃이 피어도 동박새가 나타날 것 같지 않아 처연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