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어서 ‘살아있는 시체’로 불리는 좀비. 그런데 “좀비가 날 살렸다”고 주장하는 소설가가 있다.

소설가 정명섭은 인도산(産) 목걸이를 차고 있었다. “전업작가로 사는 행운을 지키는 부적 같은 것이다. 독자의 선택을 받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써야 운을 유지할 수 있다.”/박상훈 기자

소설가 정명섭(48)은 최근 좀비에 관한 산문집 ‘날 살린 좀비’(연두)를 출간했다. 2006년부터 역사·추리·청소년 등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꾸준히 내놓은 그는 지난해 한국추리작가협회가 주는 한국추리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6년간 백화점 직원, 9년간 커피 바리스타로 살았다. 그러다 2011년 전업 작가를 선언하고 지금까지 140권의 책을 냈다. “출판사에서 연거푸 원고를 거절할 때, 통장이 비어갈 때, 밤새 한 줄도 쓰지 못할 때가 많았다. 힘든 현실을 잊을 대상으로 좀비에 탐닉했다.”

좀비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구상하고 자료를 찾았다. 한국판 좀비가 등장하는 소설 ‘폐쇄구역 서울’ ‘좀비 제너레이션’ ‘새벽이 되면 일어나라’ 등을 꾸준히 펴내며 ‘좀비 전문가’란 별칭을 얻었다. 출간된 좀비 소설만 9권. “좀비 덕에 TV 예능도 나가고 영화 자문도 하고 출판 기회도 얻었다. 이쯤 되면 좀비가 아니라 생명줄 아닌가.”

왜 좀비에 마음을 빼앗겼을까.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은 멋있기라도 한데, 좀비는 흉측한 모습의 비호감 덩어리로 그려진다. 심지어 일대일로 싸우면 인간이 이길 수도 있다. 반대로 뱀파이어·늑대인간으로 인류가 멸망하진 않지만, 좀비가 나타나면 멸망은 확정되고 문명은 복원할 수 없다. 좀비가 선사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다이내믹하다. 좀비는 거들 뿐이다. 인간들끼리 싸우지.”

좀비가 나타나면 인간은 좀비보다 위험한 존재가 된다는 게 그의 주장. 세상의 규칙이 깨지면 생존은 제1 법칙이 된다. 어떤 이는 도망치거나 상대를 속이고, 어떤 이는 타인과 연대해 좀비와 맞서 싸운다. 그렇게 좀비는 인간의 밑바닥을 드러낸다.

B급 오락 소재였던 좀비가 2000년대부터 부상하게 된 건 ‘불안감’ 때문이다. “코로나로 대표 되는 재난와 자연재해는 인류가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 하루아침에 삶이 붕괴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잠자던 좀비를 깨웠다.”

좀비도 진화한다.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에서 걷던 좀비들이 ‘28일 후(2002)’부터 뛰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속 경쟁과 효율의 원리가 좀비들에게 반영됐다. “집단을 이뤄 흐느적흐느적 움직이는 좀비는 현대 대중 사회를 은유한다. 다양성이 보장되는 것 같으면서도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도된 대중이 이 시대의 좀비다. 소수의 상류층으로 표현되는 뱀파이어와 달리, 좀비는 하류층이다.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좀비는 늘어난다.”

'좀비'처럼 그린 소설가 정명섭 캐리커쳐/정명섭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