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강원도 만항재를 출발해 운탄고도를 걷다가 노박덩굴 열매를 여러 번 만났다. 노란 껍질 속에 빨간 열매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다닥다닥 달린 것이 정말 예뻤다. 아직 껍질이 세 갈래로 갈라지기 전이라 노란색만 보이는 열매도 있었다.

노박덩굴 열매. 노란 껍질에 빨간 열매가 인상적이다.

고산지대라 추위가 일찍 찾아와서 그런지 그 많던 만항재 야생화는 이미 다 졌다. 대신 꽃보다 예쁜 열매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노박덩굴 열매는 운탄고도 길을 따라 끊임없이 만날 수 있었다. 노박덩굴 열매는 딱 콩알 크기인데, 노란 껍질과 빨간 열매가 조화를 이룬다. 이 모습을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보니 정말 환상적인 색의 조합이다.

노박덩굴 열매.

이 열매가 겨울까지 달려있는 것을 보기 힘들다. 새들이 열매가 익는 대로, 며칠 내로 거의 다 따 먹기 때문이다. 피라칸타 열매처럼 봄이 올 때까지 남아 있는 열매도 있는데, 새들이 노박덩굴 열매를 특히 좋아하는 모양이다.

노박덩굴은 전국의 산과 언덕 등에서 비교적 흔하게 볼 수 있다. 특히 양지바른 곳을 좋아해 햇빛이 잘 비치는 길가에서 볼 수 있다. 5~6월 황록색 꽃이 피지만 자잘한 데다 잎과 색깔이 비슷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가을에 열매가 달려야 존재감이 드러나는 덩굴이다. 여름엔 잎과 전체적인 모양이 비슷한 다래 덩굴과 헷갈리는데, 다래는 잎 가장자리 톱니가 짧은 바늘처럼 뾰족하고 촘촘하지만 노박덩굴은 잎이 둔한 톱니에 물결 모양인 것이 차이점이다.

익기 전인 9월의 노박덩굴 잎과 열매.

노박덩굴은 왜 이런 이름을 가졌을까.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는 책 ‘우리나무 이름사전’에서 “길의 가장자리를 뜻하는 길섶이 한자로 노방(路傍)”이라며 “길가에서 잘 자라는 덩굴나무, 즉 ‘노방의 덩굴’이 노박덩굴로 변한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햇빛을 좋아하는 덩굴나무라 길 쪽으로 가지가 잘 뻗어 나오기 때문에 산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리잡는 위치도 그렇고 노란 껍질을 열고 열매를 드러내는 것도 그렇고 노박덩굴이 노출을 좋아하는 것이 틀림없다.

노박덩굴 열매.

노박덩굴은 수목원이 아닌 산에 가야만 볼 수 있다. 인천수목원 등에서 본 적이 있지만 일부러 심은 것이 아니라 수목원 옆 숲에서 본 것이다. 대신 산길을 걷다보면 비교적 흔하게 볼 수 있고 특징이 뚜렷하고 색이 강렬해 쉽게 식별할 수 있다.

노박덩굴은 노박덩굴과에 속하는 20여종을 대표하는 종이다. 이 과에 사철나무를 포함해 재미있는 나무들이 많다. 줄기에 화살 모양의 날개가 있는 화살나무, 가을에 맺히는 열매가 분홍빛으로 마치 꽃처럼 고운 참빗살나무, 잎 위에서 앙증맞게 작은 꽃이 피는 회목나무, 미역줄기처럼 벋으며 자라는 미역줄나무 등이 노박덩굴과 가족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열매가 다육질의 껍질인 가종피(假種皮)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다.

노박덩굴은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가지만 뿌리까지 내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다른 나무에게 큰 피해는 주지 않는다고 한다. 햇빛을 차지하려고 다른 나무에 신세를 지지만 그나마 더불어 사는 방법을 알고 있는 나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