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이모(43)씨는 인공지능(AI)을 하루에 10번쯤 부른다. “지금 나오는 이 노래 뭐지?” “클래식 채널 좀 틀어줘” “반포에서 인천까지 차로 얼마나 걸릴까?”···. AI는 비서처럼 상냥하게 주문을 처리한다. 그러나 아직 만능키는 아니다. 지난 8월 31일 예술의전당 클래식 공연 중엔 객석에서 “아리아, 노래 찾아줘”가 두 번이나 튀어나와 관람을 훼방했다.

인공지능(AI)과 의사소통 관련 설문 /그래픽=백형선. 자료=SM C&C 플랫폼 '틸리언 프로' (Tillion Pro)가 20~50대 남녀 4008명 설문조사

스마트폰과 가전제품 등에 음성인식 서비스가 탑재되면서 AI는 일상으로 성큼 들어왔다. 기계와 의사소통할 일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AI가 우리말을 이해하고 반응하는 능력은 어떤 수준일까? 본지가 SM C&C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에 설문조사를 의뢰했고 20~50대 남녀 4008명이 답했다. AI와의 의사소통에 대한 2021년 10월 보고서다.

◇응답자 33% “AI 사용 중”

음성인식 AI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지 묻자 1322명(33%)이 ‘그렇다’고 답했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76%를 넘겼지만 ‘AI 비서’를 호출하는 소비자는 셋 중 한 명뿐이다. 사용하는 음성인식 서비스(복수 응답)는 ‘AI 스피커’가 53%로 가장 많았고 ‘스마트폰’(44%) ‘가전제품’(22%) ‘자동차’(16%) 순이었다. 한 소비자는 “아이의 덧셈·뺄셈 학습 파트너로 AI 스피커를 쓴 적도 있다. 또박또박 천천히 말해야 하는 불편이 있지만 대체로 만족스럽다”고 했다.

기업별 주요 ‘AI 비서’ 이름

AI 음성인식 서비스를 애용하는 까닭(복수 응답)은 뭘까. ‘이동하거나 손을 쓸 수 없으니까’가 54%였다. ‘문자로 소통하는 것보다 편해서’(28%) ‘대화하는 게 재미있어서’(27%) ‘외로움을 덜 수 있어서’(14%) 등이 장점으로 꼽혔다. 연세대 언어정보연구원 김한샘 교수는 “흥미나 정서적인 이유보다 실용성이 앞섰다”며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사용 비율이 동반 상승했는데, 청년층은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명령에 의한 기기 작동보다는 직접적인 수행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애플의 스마트 스피커의 소형 버전인 '홈팟 미니'. 애플의 인공지능(AI) 음성 비서인 '시리'로 제어하면서 음악을 듣거나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다. /연합뉴스

◇동문서답에 돌발 사고도

AI가 음성 인식을 잘 못해 불편을 겪은 경험은 무려 72%가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복수응답)를 묻자 ‘엉뚱한 대답을 한다’(68%) ‘말을 걸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28%) ‘말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대답을 한다’(23%) 등이었다. AI가 사람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경우(복수 응답)는 ‘설계된 범위를 넘어서는 질문을 할 때’(37%) ‘빠른 속도로 말할 때’(36%) ‘문장의 길이가 길 때’(35%) 등으로 조사됐다. 응답자 중 42%는 “AI 서비스가 많아 이름을 까먹거나 엉뚱한 이름을 부른 적이 있다”고 했다.

회사원 김모(여·49)씨는 좀 어려운 질문을 하면 AI 스피커가 “모르겠어요” 해서 장난 삼아 “너 바보지?” 물은 적이 있다. 돌아온 답은 “무슨 말씀이세요. 저에게는 당신뿐이랍니다.” 김씨는 “AI 여성에게 난데없는 고백(?)을 들은 셈”이라며 “이젠 아침에 날씨를 묻는 정도로만 쓴다”고 했다. 공연장에서는 AI가 새로운 ‘관크(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로 지목된다. 공연 중에 스마트폰 AI가 특정 소음에 오작동해 ‘잘 못 들었어요!’라고 하거나 ‘비행기 모드로 설정돼 있습니다!’를 외쳤다는 증언도 나왔다.

스웨덴 퍼햇로보틱스의 사람 얼굴 AI 스피커. 이용자와 눈을 맞춰가며 대화를 나눈다. /퍼햇로보틱스

◇평점은 수우미양가 중 ‘미’

AI의 현재 수준을 ‘수우미양가’로 평가해달라고 하자 46%가 ‘미’, 37%가 ‘우’를 골랐다. AI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거나 중단한 이유(복수 응답)는 ‘필요성을 못 느껴서’(42%) ‘사용법을 몰라서’(16%) ‘믿음이 안 가서’(14%) ‘흥미가 떨어져서’(14%) 등으로 나타났다.

문항 중에는 ‘AI와의 대화가 사람과 다른 점은 뭔가’(복수 응답)도 있었다. 응답자들은 ‘느리게 말한다’(37%) ‘못 알아들었을 때 다른 말로 바꿔 말한다’(34%) ‘쉬운 말로 표현한다’(33%) ‘명령 위주로 말한다’(27%)고 했다. 김한샘 교수는 “새로운 대화 상대로 등장한 AI와 의사소통하려고 인간이 노력하는 셈”이라며 “그런 배려가 필요 없을 정도로 개선해야 외로움을 덜거나 함께 놀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했다. AI야, 듣고 있니?